「돈이 없어 죽고 싶지 않습니다」란 이 말, 한참 살 나이에 죽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계신데 앞서 죽을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무슨 뜻인지 얼른 감이 잡히지 않지만 돈과 관련이 된 말인 듯 싶다.
이 말은 얼마전 한국에서 백혈병 환자들이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의료보험 적용을 요구하며 시위를 할 때 내 건 피켓의 내용이다.
해석 1로는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아서야 말이 됩니까. 죽고 싶지 않습니다. 보험에서 해결해 주십시오.」
해석 2로는 「죽은 뒤에도 돈이 드는 세상인데 돈이 없어 천대받으며 죽고 싶지 않습니다. 보험 당국의 배려를 바랍니다.」
해석 1이나 2나 돈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으로 해석된다.
초기 골수성 백혈병 환자일 경우 하루 4알의 “글리벡" 치료제를 복용해야 하는데 한 알의 약값이 20-30달러이니 그럴 법한 항변일 수 있다.
백혈구는 세균이나 이물질이 체내로 침입하였을 경우 이것들을 백혈구 내로 유도하여 분해시켜 무력화시킨 다음 세포 밖으로 내쫓고, 백혈구 자신도 이렇게 탐식작용을 한 뒤 죽게 된다.
백혈병(leukemia)이란 이 백혈구에 암이 발생한 상태이며 혈액을 만들어내는 골수 세포의 이상까지 포함시킨다. 급성일 경우 빈혈, 출혈, 발열 등 증세가, 만성일 경우 비장 종대 권태 등 증세를 호소하게 된다.
우리 몸은 일종의 전쟁터다. 세균, 기생충, 바이러스 등 온갖 이물질이 끊임없이 침략해 온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인체에는 이를 막기 위한 2단계 국방 시스템이 있다. 이것이 면역 역할을 하는 면역군(免疫軍)이다.
독성이 약한 소규모 좀도둑 수준일 경우에는 도둑이 든 세포 근처의 모세 혈관에 일시적으로 구멍을 숭숭 뚫어 이 틈으로 혈액을 홍수처럼 밀어 넣는다. 혈액 속에 있는 백혈구와 대식 세포들이 도둑을 때려잡기 위해서다. 모기가 물면 즉시 빨갛게 붓는 것도 모기의 독에 대항하기 위해 혈액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좀도둑이 아닌 대도(大盜)일 경우이다. 인체에는 1,000만 종류의 적군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방역 특공대로 T세포와 B세포가 있는데, T세포는 4-7일만에 병력을 1만 배로 증강한 뒤 적이 침투한 마을로 출동하고, B세포는 “면역글로불린" 이라는 “독극물"을 만들어 화학전을 수행한다.
T세포는 심장 뒤에 위치한 작은 장기인 흉선(胸腺·thymus)에서 만들어내고, B세포는 골수(骨髓·marrow)에서 만들어 낸다.
작전이 끝나면 T·B 이 두 세포는 대부분 자폭하지만 일부는 침입했던 적군의 특징을 기억했다가 다음 유사시에 대비한다.
그런데 인체의 이상으로 면역군이 약해 패하면 사람은 본격적인 질병에 시달린다. 설사 면역군이 강해도 B형 간염, 인플루엔자, 에이즈 바이러스, 암세포 등은 체내 면역군보다 몇 배나 강하다. 더욱이 암세포는 1mm이상 커지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이 거리로 나와 “돈이 없어 죽고 싶지 않다"는 피켓을 들고 울부짖고 있는 것은 일대 비극이다. 제도가 사회가 그들을 자연사가 아니라 자살하도록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을 생각하고, 몸이 아플 때 명의(名醫)를 생각한다고 한다. 무덤 속에서 생명을 끌어내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까지 사랑했던, 그리고 벼슬이 정1품 보국숭록대부에 까지 이르렀지만 “대감"으로 불리는 이 집 누옥에는 여전히 가난한 병자만 득실거릴 뿐, 변변한 양반 갓 하나, 가마하나 없었던 심의(心醫) 허준(許浚), 이 허준이라면 이 일을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죽음의 문제와 씨름하며 지새는 시간들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숙제와 함께 우리의 영원한 숙제이다. 억울함이 없이 죽는 것, 고통 없이 죽는 것은 거리로 나온 그들 백혈병 환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다.
어찌 보면 사람은 죽음이라는 종착역이 있기 때문에 삶은 더욱 정숙해지고 깨끗해 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뉴저지에 살고 있는 7세난 백혈병 소녀 ‘예다나 염’양을 살리기 위한 채혈 운동이 아틀란타에서도 적십자사 한인 교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예다나 양은 6개월내 골수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3개월 안에 유전자가 같은 사람을 찾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있다.
7세라면 삶이 무엇이고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다. 양손에 인형을 안고 창가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다보고 있는 순진하기만한 이 염양의 사진이 인터넷에 실렸다.
훗날 이 사진이 본인에게 사랑의 추억으로 남고, 이 추억이 또 다른 사랑의 추억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khchang@a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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