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에이저인 두 딸과 함께 매직마운틴에 갔던 적이 있다. 원래 계획은 딸아이들만 데려다 주고 하루종일 놀게 한 다음 저녁에나 픽업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가는 동안 딸아이들이 나에게 같이 가서 놀아주길 바랐다. "만약에 아빠가 우리와 함께 롤러코스트를 탈 수 있다면 우린 아빠를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할 거야." 졸라대는 딸들을 보면서 "그래, 한 번 타보지 뭐." 하는 오기가 발동을 했다. 하지만 아이들 놀이터에 그네처럼 매어놓은 타이어에 무심코 앉아 있을 때 딸아이가 그 타이어를 뱅글뱅글 돌려놓은 바람에 속이 다 뒤집힐 정도로 놀라고 고생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애당초 자신은 없었다. 간절하게 나를 바라보는 딸들의 기대를 차마 저버릴 수 없어서 결국 함께 가기로 승낙을 했다.
맨 입구 쪽에 그리 크지 않은 놀이기구가 하나 있기에 그것을 먼저 타기로 했다. 이름이 후레시브레이드라고 했다. 사이즈나 모양새가 만만했다. 그런데 웬걸 약 30초 정도나 될까 하는 작동시간동안 나는 거의 초죽음이 되었다. 기구는 레일을 따라 아래위로 오르내렸을 뿐만 아니라 옆으로도 흔들렸다. 머리는 어찔하고 속을 메슥거리고 손에는 식은땀이 났다. 온 힘을 다해 중심을 잡기 위해 매달렸다. 그러나 속수무책.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의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꼭 떨어져 죽을 것 같은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기구가 멈췄을 때 나는 거의 탈진상태였다.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딸아이들은 노랗게 된 내 얼굴을 보고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빠 괜찮아? 힘들면 이젠 더 안 타도 돼." "난 괜찮아." 대답은 했지만 하루종일 이 고생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니 아득했다. 그러다가 엉거주춤 또 다른 줄에 서게 되었다. 마침 그 코스는 매직마운틴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탑건이라는 이름의 기구였다. 줄도 제일 길었다. 그러나 내겐 그 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나 빨리 줄어드는지. 뒤로 빠질 수도 없고 어차피 또 마주쳐야 한다면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궁리를 했다. 우선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줄을 선 사람들은 빨리 차례가 오기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웃으며 고함치며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다 타고 나오는 사람들을 봤다. 모두가 만족한 표정 있었다. 아무도 나처럼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나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우선 첫 번째 내가 발견한 사실은 아무도 기구에서 떨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여하튼 떨어지지 않도록 기구가 안전하게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것일 게다. 두 번째 사실은 기구를 타는 사람들이 몸이 쏠릴 때 아무도 스스로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심하
게 쏠리는 부분에서는 두 손을 높이 들고 마음껏 비명을 지르며 그 쏠림을 즐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 큰 깨달음이 왔다. 신뢰와 의탁. 이 두 가지가 놀이기구를 즐기는 비결이었다. 스스로 발견한 비결을 대견해하면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겨보았다. 탑건에 올라탔을 때 나는 다짐했다. "나는 이 기구를 믿는다. 나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이 기구에 내 몸을 맡긴다. 나는 즐거울 것이다" 결과는 나 자신도 깜짝 놀랄만한 대성공이었다. 긴장과 공포의 몸부림 대신에 마음껏 탑건의 스피드와 요동을 즐길 수 있었다. 그 한번의 성공 이후에는 어떤 놀이기구를 타던지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 날 하루종일 매직마운틴의 모든 놀이기구는 내 즐거움의 대상이었다.
극심한 공포를 지극한 환희로 바꾸어 놓은 한 순간의 깨달음은 놀이기구를 타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내 신앙과 삶을 위해서도 매우 큰 은혜의 사건이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으로서 스스로 중심이 되려는 애씀을 접고 그 분을 믿고 그 분께 맡기는 만큼 자유와 즐거움이 확대된다는 진리를 실감나게 경험한 것이다. 나는 딸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 가기 전보다 훨씬 더 믿음이 좋은 사람이 되어서 매직마운틴을 나왔다.
하나님과 매직마운틴의 놀이기구 이외에도 우리 삶 가운데 신뢰하고 의탁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우린 더 많은 즐거움과 자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뢰와 의탁에는 배반의 위험이 항상 따른다. 그래서 신뢰와 의탁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신뢰하지 않거나 아무에게도 의탁하지 못하는 것은 오히려 배반당하는 것보다 더 참담한 일이다. 별로 성공한 경험을 가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새로 시작하는 대통령을 다시 한번 신뢰하고 그에게 의탁해 보자. 그리고 물러나는 대통령은 신뢰와 의탁이 배반당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참담함에 대해 진솔한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신뢰와 의탁에 대한 마지막 도리이며 용서와 용납을 위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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