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컴퓨터가 있는 방은 전망이 좋아 한눈에 아름다운 시야를 다 볼 수 있다. 멀리 펑퍼짐하게 드러누워 있는 언덕의 외형은 우선 순박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해마다 봄이 되면 보기에도 민망할 매혹적인 나신에 뛰어난 색채의 감각을 살려 연록빛의 천으로 휘둘러 살짝 불거져야 할 곳과 슬쩍 들어가야 할 곳을 조화롭게 구릉과 곡선으로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는 이음새가 무척이나 부드럽다.
지난 여름, 처음에 내가 이 방을 차지할 때만 해도 썰렁하게 비어있는 창문과 벽이 마음에 걸려 며칠을 궁리를 했지만 고심 끝에 아무래도 커튼을 하면 이 아름다운 시야를 가려버릴 것 같아 발란스만 창문 위에 걸쳐주곤 지금까지 아무것도 없는 채로 지낸다. 한 칸의 방이라도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기에 나의 정신적에서 오는 답답함으로 치레를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화려하고 세련된 창문 치레가 과연 저렇듯 바깥의 자연 풍경보다 더 근사하게 보이겠는가.
어느 날이다. 하늘을 너무도 붉게 물들여 놓는 저녁 노을이 창문 앞 시야에서 조금 비킨 언덕 너머로 넘어 갈 즈음 벽에 가려 보이지 않아 뒷마당으로 나갔다. 아름답다! 서녘으로 기운 그윽한 붉은빛은 내 가슴을 분명 설레게 했다. 마치 수채화를 그린 듯한 자연의 신비(神秘)를 느끼면서 벽 전체가 창문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면 더 많은 것을 눈으로 거쳐 가슴으로 느끼지 않을까 해서다.
허물고 싶은 거다.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벽들을 허물게 되면 평소 때 느끼지 못한 순수한 면을 창문처럼 훤히 볼 수가 있지 아니하겠는가. 아름답게 보이는 자연조차도 이렇듯 가슴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은 맑게 바라 볼 수 있는 창문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의 풍요와 끝없는 욕망에 짓눌려 점점 마음의 벽을 만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조금씩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혼자만의 생각으로 벽을 만든 마음의 자리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벽 그것은 사람의 가장 근본적인 진실을 보여주는 것을 외면하는게 아닌가. 이제는 가족 간의 대화조차도 생활 깊숙이 파고든 인터넷 시대에 밀려 마음의 벽이 생겨나게 된다. 어쩌면 인간의 정서와 꿈을 빼앗아 가는 기계로 인해 진실한 행복의 실(實)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한다.
지금은 2월, 캘리포니아의 봄이 새순에 담겨 파랗게 신비함을 깨물고 있다. 며칠 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연락을 못 전해 몇 년 동안 소식이 끊겨 다시 못 볼 것 같던 친구에게 새해 연하장이 날아왔다. 어린 시절 함께 지냈던 시골 풍경이 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그림이었다. 고향을 그리워 하는 내 가슴의 빈자리를 용케도 알고 보내준 사랑이었다. 벌써 친구는 제 가슴의 벽을 먼저 허물어 창문을 활짝 열어 연둣빛 새순 같은 순수한 자연의 마음으로 보내주었을 것이다. 어느 사이 창문 앞을 향한다. 이 앞에 멀리 보이는 언덕의 연초록빛을 다 담아 사랑하는 친구에게 보내고 싶다면 지나친 소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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