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학자 칼럼
▶ 정호웅 (버클리대 방문학자)
사람살이의 중심은 어딜 가나 먹는 게 아닌가 싶다.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 생활의 상당 부분이 먹는 문제를 가운데 놓고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을 옮겨 외국에서 살고 있다면, 낯설고 입에 선 음식 문화 때문에 먹는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높아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6개월의 내 미국생활을 돌아보니 그렇다.
이곳 이베이(e-bay) 지역의 음식은 대체로 짜고 느끼하다. 대식가인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양이 많다는 것도 이 지역 음식의 특징이다. 양이 많은 음식을 대하면 식욕이 확 줄어든다. 윽박지르는 듯한, 밀고 들어오는 듯한 느낌 때문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는 것이다. 음식을 남겨야 하는 것도 일회용품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저 귀한 것을 버려야 하다니, 이렇게 쓰레기를 마구마구 만들어내야 하다니, 고약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서양 음식점 가는 것이 갈수록 꺼려져서 자연히 한국 음식점이나 중국 식당 등을 찾게 된다. 짧은 미국살이 동안 내가 다닌 한국 음식점과 중국 식당은 그래서 꽤 된다. 그 음식점 찾기의 과정에서 내 눈에 들어온, 식당 언저리 풍경 가운데 인상적인 몇 개를 되새겨보고 싶다.
풍경 1: 버클리 대학 근처에 자리한 작은 한국 음식점에 몇 번 들렀다. 분식이 전문이다. 지난여름 어느 날 이 집에서 냉면을 먹고 나는 놀랐다. 냉면이란 참으로 미묘해서 질이 떨어지면 아예 먹을 수 없는 그런 음식이다. 그런데 이 집의 냉면 맛이란! 한국 곳곳에 깃발을 높이 내걸고 이름 높은 이런저런 유명 냉면 집의 냉면 맛과 견주어 전혀 손색없는 훌륭한 음식이 아닌가.
주인의 설명을 듣고 그 사정을 조금 짐작할 수 있었다. 비결은 주인의 음식철학이었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그의 성실한 의지였다. 그의 음식철학은 단순명료하다. 어떤 음식이든 재료의 특성을 온전하게 살려야만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뒤섞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 전부다. 우리 대부분이 잊어버려 그런지 아닌지도 모르게 되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음식의 기본 원칙 아닌가.
온갖 인공 조미료로 범벅된 음식 천지라, 한국 땅에서도 본 재료의 맛을 살린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인데, 만리 이역 미국 땅에서 한국 음식의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음식철학을 굳건히 실천해오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음식철학은 손님들의 입맛과 타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재료를 넣어달라는 손님의 요구는 정중하고 단호하게 거절한다고 한다. 음식 맛을 왜곡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래서 그럴 것이다. 그의 음식점은 언제나 한산했다. 찾는 사람이 적어 때로는 적막한 느낌조차 드는 그 음식점의 한산함을 나는 깊이 새기고 있다.
풍경 2: 거리를 걷노라면 곳곳에서 한국어로 된 메뉴판을 밖으로 내붙여 놓은 중국 음식점을 만날 수 있다. 거의 대부분, 한국에서 건너온 화교(중국 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한 맛의 짜장면이며 짬뽕이며 탕수육 등을 맛볼 수 있어, 여기 와 사는 한국인들은 아마도 아이들 손을 잡고 자주 들를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주인의 태도이다. 한국인들의 한국말에 같은 한국말로 응대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다. 반가워하는 것도 아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사무적이다. 거의 그렇다. 한국어로 된 것은 다만 메뉴판뿐, 신문이며 책이며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 땅에 중국인들이 대거 들어온 것이 19세기말이니 그들은 3-4대에 걸쳐 100년 가까이 한국 땅에서 살아온 셈인데, 그렇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여기저기 물어서 알아보니 그 뒤에는 한국인들의 무시무시한 인종차별의 역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한국 내 중국 교포들은 이민족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한국 사회의 제도적 문화적 인종차별의 장벽에 갇히고 막혀 지난 100년을 살아왔던 것이며, 그 엄청난 인종차별의 폭력을 위해 미국으로 대만으로 탈출했던 것이다. 그 오랜 세월 그들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 원한의 더미는 어느 정도일까? 가해자의 하나인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멀고 먼 미국 땅에서 그 한 귀퉁이를 엿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자랑하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 들어 있는 무서운 인종차별의 폭력성을 한국인의 대부분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 때문에 우리는 다른 나라의 인종차별 역사와 현실을 소리 높여 비난하고 함께 아파하고 그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인종차별의 반대하는 열린 인류애의 소유자들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것이다.
온갖 민족과 종족이 어울려 살아가는 이베이 지역의 밝은 햇살 아래에서 한국 사회, 한국인 일반,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의식의 안쪽에 깃들여 있는 야수의 얼굴을 한 인종차별의식을 들여다보고 두려움에 몸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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