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년 전의 일이다. 11월의 어느 날 밥을 먹는데 쇠고기 장조림 반찬이 상위에 올라 있었다. 무심코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데 오래 전의 기억 한 토막이 함께 건져져 올라왔다. 광성교회의 김창인 목사님에 대한 기억이었다. 1985년 가을, 그 분이 당시 내가 출석하던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오셨다. 소위 모태신자로 교회를 다니던 나였지만 그 때 비로소 그분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의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만남의 감격과 영향력이 너무 컸기에 그 만남의 통로 역할을 해 주셨던 김목사님에 대한 기억은 오히려 잠시 밀려나 있었다. 그런데 밥상 위의 쇠고기 장조림이 그 분을 생각나게 해 준 것이었다.
그 분의 가난했던 고학생 시절의 간증 가운데 쇠고기 장조림 이야기가 나온다. 워낙이 먹거리가 부족할 때라 지혜가 필요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이 좀 생기면 비싼 쇠고기를 한 근씩 사서 장조림을 만들었단다. 밥 먹을 때마다 한 토막을 가지고 한 입 베어먹는 것이 아니라 빨아먹고 도로 간장에 담가 놓았다가 또 한 입 빨아먹고 하면 장조림 한 토막으로 밥 한 그릇을 너끈히 먹고도 남았다고 한다.
장조림 때문에 불현듯 떠 오른 기억과 함께 생각해보니 김목사님은 나에게 엄청난 은혜를 끼친 분인데도 불구하고 난 그 때까지 그 분에게 아무런 감사의 표현을 하지 않았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다. 마침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급히 편지를 썼다. "목사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전 14년 전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구원을 얻었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고 있는 아무개입니다. 귀한 은혜를 입고도 지금까지 감사하다는 인사 한 마디 못 드렸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대충 이런 요지의 편지와 함께 See`s 캔디 몇 통을 보내드렸다. 한 참 후에 김목사님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당신의 설교집을 선물로 보내 주셨다.
감사의 계절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감사가 하나님을 향해서 드려져야 되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면 그 동안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어 준 많은 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연결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항상 같이 가는 것이고 이웃에게 한 것은 항상 주님에게 한 것과 같은 것이다. 보이는 사람에게 감사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감사한다는 것은 공허하다. 그러므로 서로가 감사하는 마음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우리 삶의 현장이 훨씬 더 아름답고 풍성해 질 것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지난 추수감사주일에 설교대신에 성도들이 나와서 서로에게 대해서 감사의 편지들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회공동체에 대한 감사’, ‘배우자에 대한 감사’, ‘부모님에 대한 감사’, 등등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감사의 마음들을 말로 표현하는 시간이었다.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나 그 감사를 받는 사람이나 거의가 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특히 십대 청소년들이 부모님들에 대해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읽을 때는 아이들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지만 그 부모들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엄마, 아빠 미국 와서 힘들게 일하고 수고하시는 것 다 저희 때문인 줄 알아요. 제가 아직은 철이 없기 때문에 엄마 아빠 속 썩일 때가 많지만 이제 잘할께요. 힘내세요." 철없어만 보이던 자녀들의 그 한 마디 감사의 표현에 부모들의 수고와 한숨과 아픔이 한꺼번
에 싹 씻겨지는 것 같았다. 막상 행동은 또 어떻게 할지 몰라도 일단 자녀들에게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부모들은 이미 만족했고 충분히 위로 받았다. 어느 설교자가 이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가까운 사이의 당연한 일들이 감사로 표현되어지니까 이제는 감사를 넘어 감격이 되었다. 결국 당연함이 감격이 된 것이다. 가장 깊은 감사들이 나누어져야 할 대상은 부부사이인 것 같은데도 오히려 배우자에 대해서는 다들 쑥스러워하고 머뭇거렸다. 감사할 일만큼이나 상처들도 많기 때문일까. 아무튼 진지할수록 말로 표현하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예배의 마지막에 각 가족별로 나와서 일년동안의 여러 가지 감사의 내용들을 적은 목록과 함께 감사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다. 나중에 정리해 보니 같은 내용들을 이리저리 묶고 나서도 서른일곱가지나 되었다. 평범한 일상, 그 주변에서 건져 올린 것이 서른일곱가지라면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다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 의미일 게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나뭇잎이 어느새 수북한 낙엽더미로 쌓이는 것처럼 그렇게 감사들이 쌓여 있었다. 그 감사 하나 하나가 당연한 것을 감격으로 바꾸어 놓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가슴속에도 숨겨져 있고 쇠고기 장조림 한 토막에서도 찾아진다. 주위를 둘러보아 숨겨진 보물과 같은 그 능력들을 찾아내어야 할 계절이다. rolcf@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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