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학자 칼럼
▶ 김한곤교수(스탠포드대학 방문학자)
광복과 한국전쟁의 격랑기를 경험한 세대에 이어 콩나물 교실과 치열한 입시 및 취업경쟁을 경험한 베이붐 세대들의 자녀에 대한 교육열정은 가히 처절하기까지 하다. 배고픔과 헐벗음을 경험한 세대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교육의 성과를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들 역시 자녀교육에 대한 투자만이 사회적 상승이동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에 불과했던 1960년으로부터 불과 40여년이 경과한 현재 한국은 국민 1인당 소득 8800달러에 이르는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경험하였으며 이러한 경제성장에는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이 급속한 경제성장의 가장 큰 촉매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는 듯하다.
텍사스주의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98,000 평방 킬로미터의 좁은 영토에 무려 4,70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200여개의 국가 가운데 인구밀도 3위를 차지하는 나라이기에 출생과 동시에 시작되는 생존경쟁은 그 어느 사회보다 치열할 수 밖에 없는 사회환경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보다 경쟁력 있는 자녀로 키우기 위한 부모들의 무조건적 희생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같은 부모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지나침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역협회가 발표한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통계지표에 의하면 명목 국내총생산(GDP)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3%로 덴마크(7.17%)에 이어 2위에 올아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GDP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96%로 2위와 3위에 해당하는 미국 및 그리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함으로써 늘 인구에 회자되어 오던 한국인들의 과도한 교육열을 통계자료로서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한국정부에서는 지나치게 상승하는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억제하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를 내린 바 있다. 사실 서울의 강남을 중심으로 최근 2∼3년에 걸쳐 아파트 가격이 2배 가까이 올랐으며 이러한 투기에 가까운 아파트 가격상승에는 유명 사설학원이 밀집하여 그 명성을 높여가고 있는 강남의 대치동이 핵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일부 부유층 학부모들이 자녀교육을 이유로 이름난 사설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대치동으로 이동함으로써 평당 2천만원을 홋가하는 아파트시대를 열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서울의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연쇄이동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자녀교육에 과도한 열정은 학부모들에게 엄청난 주거비용을 초래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사교육비 마련과 연관된 여러 형태의 부작용 역시 언론에 빈번하게 소개된 바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자녀들의 사육비 충당을 위한 학부모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학부모들을 궁지로 내몰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그 무엇보다도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한국교육의 제도적 모순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환경적으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여건은 일관성과 장기적 안목이 결여된 교육정책과 더불어 학부모들이 공교육보다는 사교육에 더 더욱 집착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부모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치가 모두 충족될 수 없는 데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사회적 모순의 돌파구의 하나로 자녀들의 조기유학에 대한 학부모들의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서울 특히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자녀들의 영어교육을 위한 조기유학 현상은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으며 돈 있는 강남사람들은 미국으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고 조금 여유가 덜한 사람은 캐나다 혹은 호주 및 뉴질랜드로 자녀를 보내며 그 보다 여유가 못한 사람은 영어권에 해당하는 필리핀으로 자녀를 보내고 있으며 그도 저도 형편이 안되는 사람은 중국으로까지 영어유학을 보낸다고 한다.
통계자료에 의하면 초등학생들의 조기유학이 지난 1999년 1,839명에서 2001년 현재 7,944명으로 2년 동안에 무려 4.3배나 늘어난 것으로 보고된 바 있으며 이러한 조기유학 추세는 더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1년에 발표된 미국내의 교육기관에서 유학하고 외국인 학생들의 통계자료를 살펴 보면 한국유학생 수는 약 4만 6천명으로 10억 인구의 인도 유학생 6만 6천명 그리고 인구 13억 5천만명의 중국유학생 6만 3천만에 이어 4만 6천명으로 일본을 제치고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되다시피한 현실에서 미국과 같은 영어권 국가에서 많은 한국학생들이 보다 선진화된 학문을 접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의 장래를 생각해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조기 해외유학생 가운데 본인 스스로 나름대로의 확고한 신념과 목표의식을 가지고 학업에 임하는 학생들은 언어장벽과 환경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비교적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의 과욕과 사회적 조류에 편승하여 등 떠밀리듯이 시작하는 해외유학은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고 하겠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자칫하면 유학생활의 어려움을 마약을 통한 현실도피나 환락을 통한 자포자기 상태로 내몰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기 해외유학은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결정할 필요성이 있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녀를 가진 모든 부모들의 한결같은 바램일 것이다. 그러나 자녀의 소양과 의사는 무시한 채 부모가 설정해 놓은 목표를 위해 맹목적일 정도로 모든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떨쳐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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