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데스토 사는 수잔 스미스씨의 애끓는 사모곡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낳은 어머니와 형제들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한인과 백인의 혼혈아로 인천에서 태어나 다섯 살 나던 해 미국으로 입양돼온 수잔 스미스(42·Susan Jane Smith)씨의 애끓는 사모곡(思母曲)은 36년 전 끊어진 ‘혈육의 정’을 되살리고 싶은 본능일까?
모데스토에 거주하는 수잔씨는 자신이 어떤 경로로 미국에 온지도 모른 채 36년을 살아왔다. 순탄치 못한 양부모 가정에서의 삶 때문에 한국에서의 성장배경과 입양과정을 듣지 못했던 수잔씨는 87년 양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긴 사진 한 장을 보고 친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어렴풋이 짐작했을 뿐이다.
수잔씨의 ‘마음의 행로’는 지난달 팔십 고령의 양어머니(플로리다주 거주)가 보내준 입양당시 한국정부가 작성한 영문 경위서를 받으면서 본격화됐다. 이 문서를 보고 그는 자신의 한국이름이 노순려(Ro, Soon Ryu)라는 것, 그리고 생모의 이름이 노미자(Ro, Mie Ja)라는 것, 그리고 자신은 세 딸중 하나라는 것 등을 알게되었다.
1965년 9월 4일자 한국의 보건사회부 산하 대한양연회(Child Placement Service)가 작성한 이 문서에는 어린 순려 가족의 주소가 인천시 금곡동 28번지로 적혀 있다.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일했던 어머니는 백인 병사와의 사이에 세 딸을 낳았다고 기술돼 있다.
수잔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다시 데려간다는 약속을 남기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연락은 물론 생활비 송금마저 끊기자 수잔의 어머니는 혼혈아라고 놀림받기 십상이었던 세 딸을 고아원에 맡기었다.
수잔(당시 5세)은 한국의 혼혈아들을 입양하기 원했던 양부모를 따라 1966년 2월 24일 펜실바니아주의 피츠버그에 도착했다. 그의 양부모 월터 헐과 캐스린씨는 그의 이름을 수잔으로, 그리고 같은 고아원에서 데려온 다른 한국 남아(당시 3세)를 로버트로 지어줬다.
수잔씨는 고교 졸업후 미공군에 입대, 4년간 복무후 제대 후에도 군속으로 10년 이상 근무했다. 83년 오산 공군기지를 방문했던 것이 한국땅을 다시 밟았던 짧은 기회였을 뿐이다.
수잔씨는 양부모로부터 뒤늦게 받은 사진중 뒷줄 오른쪽 젊은 여성이 어머니, 그리고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할머니일 것으로 추측했다. 그밖에 다른 2명의 자매도 역시 미국으로 입양됐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다.
수잔씨는 이달초 입양경위를 담은 문서를 토대로 상항총영사관에 생모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문의했으나 "알선기관의 어떤 정보도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을 들었다"고 아쉬워했다.
남은 희망은 "1966년 당시의 사진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연락해오기만 기다릴 뿐"이라고. 꽃집을 운영하며 네 자녀를 둔 수잔씨는 "당시에 나를 버려야만 했던 어머니의 처지를 이해한다"면서 "단 한번만이라도 다시 만나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수잔씨의 주소는 2012 Winslow Ct., Modesto, CA 95355, 전화 209-523-0144, 209-572-2171.
<한범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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