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산하에 낙엽의 계절이 왔다. 가을은 성장과 번성을 지나 거둠,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퇴락하는 서글픔도 따르고 홀로 사색하며 미진했던 일들을 다시 챙겨보는 자기 성찰도 따르는 계절이다
얼마전 한국일보 오피니언 기자수첩 난에 ‘미주 문인 작품은 찬밥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미주 문인들이 작품집을 출판해 책 판매를 의뢰하면 한인타운 내 서점들이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국의 문인들에 비해 작가의 지명도가 낮다는 점과 주목할 만한 작품이 없다는 이유로 비주류 대접을 받고 있다는 매우 유감스런 내용이었다. 그런가하면 항간에서 미주 문인들은 양적으로 많은데 질적으로 우수한 작품이 없다는 혹평 또한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작품에서 문학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또 그 가치가 설득력으로 작용하는 감동의 확산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학작품으로서의 존재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러나오지 않는 예찬과 열광처럼 사람을 슬프게 하고 힘 빠지게 하는 일도 없다. 이처럼 미주 문인들의 작품이 찬밥 신세로 가는 심각한 사태라면 우리 문인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분노하기 보다 각자의 작품 세계에 대해 한번쯤 깊이 살펴보는 자성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니체는 “글로 쓰인 모든 것 가운데서 나는 오직 필자가 그의 피로써 쓴 것만을 사랑한다. 그러면 그대는 피가 정신임을 체험할 것이다. 피와 잠언으로 쓰는 자는 읽혀지기를 원치 않고 외워지기를 원한다”는 말을 했다. 그의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지만 과장이나 괴리가 없다.
니체의 말에 비쳐볼 때 과연 우리는 피로 쓴 충실한 문학 작품을 발표하며 출판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앞선다. 어둡고 추운 곳에서 자기의 씨앗을 깨고 싹 티우려는 피나는 의지 없이 단지 감수성만으로 안일한 넉두리의 글이나 썼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가을에 영글지 않은 열매가 쓸모 없는 것처럼 우리의 작품 또한 시대나 독자에게 거부되고 외면 당하는 찬 밥 신세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작품은 삶의 다른 표현이다. 작품이 사물의 묘사를 통해 새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며, 삶의 잘 훈련된 눈을 통해 감성과 이성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관조의 깊이에 따라 쓰여진다고 할 때 삶의 성숙도가 문제가 된다. 성숙된 삶, 즉 인간됨이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성숙한 삶이란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사물을 바라보는 지혜의 눈을 갖는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어느 수준에 서 있는가,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지며 삶의 내용은 곧 작가의 작품의 내용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의 자리, 문학의 자리를 뒤돌아보는 자성의 행위는 저마다의 삶을 위대하게 만들 뿐 아니라 미완의 장을 완성의 계기로 삼게되는 새로운 의미를 안겨준다.
우리 문학 작품이 이제는 좀 더 고급화해야겠다. 작품의 고급화를 위해 고독과 불멸의 밤을 늘리며 공부하는 작가, 그 순수한 열정의 애씀이 있을 때 문학은 정화되고 빛나게 될 것이다. 작가가 고급화된 작품으로 말을 할 때 지명도는 자연히 높아질 것이며 찬밥의 처지를 면케 될 것이다. 우리 문학 작품이 세계 문학을 주도해나갈 만큼 수준을 고급화 시켜야 하는 것이 오늘 우리 문인들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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