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국이 지난 3주간 저격 살인으로 경악한 가운데 경찰은 24일 새벽 존 앨런 무하마드(41)와 존 리 말보(17) 부자를 용의자로 전격 체포했다.
그동안 워싱턴 일대에서 저격 사건으로 10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하는 인명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체포되기 전날 범인은 “당신의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공개 협박과 함께 1천만달러를 요구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치 사람을 토끼 사냥하듯, 경찰을 비웃으며 치밀하게 저지른 무작위 저격 살인으로 인해 인간의 잔인성과 ‘인간 경시 풍조’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 지 이 사건은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몇몇 학자들과 범죄 전문가들은 범인이 어렸을적에 차별과 소외를 당했거나 정신병력의 소유자일 것으로 진단하면서 ‘인간’과 ‘품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무하마드는 두번의 이혼과 4명의 자녀들에 대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하튼 이번 사건으로 인해 물질 만능 사회에서의 ‘인간 경시 풍조’는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인간 경시 풍조의 원인은 크게 자본주의의 전개와 관료 조직화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경제적 부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목적·수단의 전도 현상이 생기고, 관료 조직화된 사회 속에서 인간은 원자화되어 무력하고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
인간의 가치가 상대성을 띠는 준거의 하나는 물질이다. 극도의 가난 속에서 사람은 목숨과 인신(人身)을 물질과 맞바꾸는 행위를 하게 된다.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제도나, 자식을 몸값을 받고 노예로 팔아 넘기는 행위나, 다른 사회를 약탈하는 폭력 등을 정규적으로 자행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그러나 근대화 이후 일반적인 생활 수준이 상당히 높아진 뒤에도 인간의 가치가 물질과의 관계 맥락에서 변질·하락하게 된 데에는 다른 설명이 따른다. 이른바 자본주의적 가치의 이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란 원칙적으로 인간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한 목적적 가치를 띠게 되고, 모든 가치 판단의 1차적 준거가 되는 목적·수단 전도의 현상이 드러나게 된 데에 문제가 있다.
사람이 물질을 좋아하고 돈맛을 즐기며 경제적 풍요를 희구하는 성향은 그 표현 양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화폐에 의한 가치 판단과 물질 위주의 단세포적 욕구가 우세하게 된 데 있는 것이다.
사람이 만드는 재화나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용역의 참가치는, 일하는 이에게는 노동이라는 창조의 즐거움 그 자체의 표출적·목적적 가치에 있고, 그것을 활용하는 이에게는 씀으로써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데에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노동도 돈으로 사고 파는 상품이 되고, 쓰는 이의 입장에서도 재화나 용역은 그가 치르는 화폐의 가치가 규정하는 교환 가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을 재는 잣대가 돈과 그것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 가치로 변질한다. 그래서 의사나 변호사가 돈의 가치기준에 의한 좋은 직종으로 평가되고 또 그들 스스로가 돈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인간’의 본래 목적을 잃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물질 만능과 배금주의의 시대가 앓고 있는 1차원적 욕구 편협의 증세인 것이다. 이러니 사람의 목숨을 귀중하게 여기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사실 인간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누리는 기초 조건이란 별것이 아니다. 자기 말을 들어 주고 결정 과정에 자기도 참여한다는 소박한 ‘사람 대접’ 정도이다. 그것을 허용하는 데 있어 관료적이거나 엘리트 의식이 필요하진 않다.
우리는 이번 저격 사건을 통해 우리의 욕구를 물질 중심의 편파와 경직으로부터 해방시켜 다원적이고 유연한 욕구 체계를 갖추도록 하고, 개인의 품성과 인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칠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상식을 넘어선 데에는 ‘인간교육’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삶의 가치가 물질적 삶의 안락과 육체적 삶의 쾌락에만 있을 턱이 없다.
풍부한 정신 세계의 신비 속에서 아름다운 삶의 낭만을 찾고, 차분한 심리적 안녕을 누리는 질적인 삶에 더 높은 가치를 두어 보자. 이는 문화를 꽃피우는 삶이요, 극단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우리가 그동안 너무도 소홀히 해 온 삶의 문화적 측면이다.
조직 생활을 운영하는 사회 지도층은 ‘인간화’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일하는 사람의 질적 차원을 고려하여 누구나 일하는 과정 속에서 자아 실현의 꿈을 이룩하고자 힘쓰게끔 조직 원리를 개선해야 한다. 참여를 통한 자발적 헌신과 몰입이야말로 조직체가 그 나름의 목표를 달성하는 가운데 인간은 사람으로서의 보람을 조직 생활에서 찾는 첩경이 된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바로 그 때가 될 것 같다.
<편집·취재부장> ej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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