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토끼를 쫒고 있다. 그런데 결국 토끼를 놓치고 말았다. 여우가 토끼를 놓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우는 한끼 음식을 위해 뛰었고 토끼는 목숨걸고 뛰었다는 것이다. 예수를 여우처럼(한끼 음식을 위한 정도)믿는 사람과 토끼처럼(생사를 걸고)믿는 사람의 결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신앙생활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악세사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드시 해야하는것이고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이민사회에서의 신앙생활의 초점은 더 심각하다. 여우와 토끼는 같이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걸린 생존의 갈림길에서 뛰는것 만이 살길이였던 토끼가 살았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이유도 이같아야 하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것이 영원히 살수 있는 길인데 ‘되면 좋고 안돼면 말고’ 식의 타협하고 안주하는것이 우리 삶의 모습이 아닌가? 아니 어쩜 나의 모습이였다. 언제가 부터 잃어가는 나의 꿈과 비젼들이 점점 먹고 사는것에만 익숙해져 그냥 쉽게 안주하려는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였다. 애가 둘이나 되는데 내가 뭘 할수 있을까? 결국 모든것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예수를 영접할 고등학교 2학년때 어는 집회에서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헌신기도를 한적이 있었다. 그 열정은 전문직을 가지고 선교를 나가는 것이였다. 하지만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오 하나님 그때 그 기도 기억하지 말아 주세요 선교사가 왠 말입니까! 평신도로 귀하게 쓰임받게 하옵소서 주님’ 이렇게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내 마음에 늘 메아리처럼 울리는 그때 그 기도문이 자꾸만 되새겨 지는데 이젠 그 말씀에 조금씩 귀가 열리고 마음이 동하고 있다.
주님을 위해 독(?)한 마음을 가지고 시도해야 겠다. 시도하다 실수하는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지만 주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음은 부끄러운 일이나깐...
지금 남편은 멕시코로 단기선교를 갔다. 나에게 주신 이 감동을 동일하게 그곳에 있는 남편과 함께하는 모든 단원들에게 주시기를 기도한다.
토끼처럼 선한 싸움과 꿈을 위해 달음박질하는 우리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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