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국운 융성
평상시의 정상적인 수면시간과 배교해 볼 때 지난 6월한 달은 내 일생에서 가장 적은 수면시간을 가진 것 같다.
밤 11시30분부터 새벽 1시나 1시30분까지, 또 새벽 4시나 4시30분부터 6시까지 계속되는 월드컵 경기를 한 게임이라도 놓칠세라 아주 열심히 열심히 봤다.
축구선수를 해 본 적도 없고 축구경기 기사를 쓰기위해 따로 공부한 적도 없었지만 한국 팀의 달라진 면모를 비교해 보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 대표팀의 경기를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른나라 팀들끼리의 경기는 푸근한 마음으로 그 경기를 볼 수 있었지만 우리 한국팀의 경기관람은 마음을 졸이며 불안과 초조함 뭐 그런 것들이 뒤범벅이 된 상태에서 본 것이 사실이었다.
우리 팀이 선취골을 넣고 난 뒤 나머지 시간은 더디 가는 것만 같았지만 선취골을 뺏긴 뒤의 경기시간 흐름은 그렇게 빠르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월드컵 첫 승"이라는 호외를 만들어 낼 때만해도 4강까지의 진출은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졌다.
어쨌든 월드컵 4강 신화와 감동의 여운은 아직도 4천7백만 한국인의 가슴에서 채 가시지 않았음이 여러모로 증명이 되고 있다.
마치 축구가 人生의 전부이었던 것처럼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허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미주지역에 사는 교포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는 [월드컵 시계(?)]에 맞추다 보니 생체 리듬까지 변해져 있었다.
이제는 월드컵에서 우리 한국 선수들이 거둔 4강이라는 찬란한 성적과 거리 응원에 나섰던 시민들의 붉은 물결을 두고 이런저런 논의와 담론이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대표선수들의 지칠 줄 모르고 뛰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K형은 자신의 건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꿈도 꿈나름’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꿈이 정말 실현되는 것을 보고 추진하는 일에 자신감을 얻었다는 분도 계셨다.
제일 가슴에 와 닿는 얘기는 ‘하나의 한국인’으로 뭉쳤다는 얘기였다.
이미 보도돼 아는 사실이지만 5백만이 넘는 한국인들이 길거리 응원에 나섰다.
물론 주축은 10, 20대의 젊은이들이었지만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따로 구별이 없는 한덩어리였다.
필자 가족은 지난 달 22일 스페인과의 대결을 하는 날 마침 LA한인타운에 있었다.
신문지상의 화보만으로 보았던 붉은 물결의 응원단을 실로 코앞에서 보고 민족적 자긍심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분 모두 나오십시오, 붉은 옷을 입고 나와 같이 모여 응원합시다…"
아마 이런 식으로 독려했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모일 수가 있었을까?
시키는 일에는 오히려 외면하는 것이 우리 한국민들의 특성이라고 어떤 사람은 꼬집기도 한다.
자발적으로 모인 모임이었기에 거기엔 한 목소리의 함성이 만들어졌고 그것들은 또한 아름다울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붉은 응원의 물결은 신나는 젊은이들, 축구에 열광하는 청소년들, 멋진 축제와 멋진 선수들에게 매혹된 여성들, 그리고 민족적 자긍심에 고취된 기성세대등등 여러개의 구심을 가진 아주 지극히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신바람이었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걸 가지고 하나의 이념과 외부의 힘으로 묶으려는 정치권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다.
사회지도자라는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은 언필칭 이번에 국민들의 혼연일체를 보고 국운융성의 계기로 삼자고들 말한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이유와 신명으로 모인 사람들을 하나의 목표를 정해 몰고갈려한다면 "글세, 그게 잘 될까?"하는 우려가 앞선다.
국민들이 국운융성을 바라는 것은 소박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정치권이나 정부가 국운융성에 월드컵을 끌어다 붙이는 것은 어쩐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부패비리를 고백한 뒤 스스로 정치개혁에 나서지 않고서야 축구 성적하나를 빌미삼아 국운 융성을내세운다면 국민들이 웃을 일이다.
아직도 지연·학연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 아닌가?
히딩크 감독은 글자그대로 학연·지연등을 배제한 선수관리로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올려놨다.
월드컵 4강 신화가 끝난지 달포도 안돼 8.8 재보선이 실시된다.
또 이해가 가기전에는 차기 대통령 선거가 있다. 국운융성을 내세우는 정치권이 월드컵을 계기로 얼마나 달라져가는가 지켜볼 일이다.
<본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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