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마침내 월드컵을 3번이나 차지한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는 위업을 이룩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했겠지만 히딩크 감독의 전략과 온 국민이 하나가 돼 성원을 보낸 ‘붉은 악마’의 공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나타난 ‘붉은 악마’는 특이한 현상이다. 그 정체는 무엇일까. 축구 열기, 발광, 발악, 광기, 집단 히스테리? 붉은 악마의 함성은 한 가지이지만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는 여러 가지다. 그저 할 일 없이 심심하던 차에 군중심리에 휩쓸려 응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조국을 떠나고 싶어하던 사람,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 정치 현실에 신물이 난 사람, 개인적·사회적·국가적 차원의 스트레스에 지친 사람, 그리고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자기의 꿈을 포기한 사람 등등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붉은 악마의 응원을 국민적인 한풀이 현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은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피지배감, 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간의 박대감, 서로 속이고 속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피해의식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역사적으로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받아왔고 지금도 미국, 소련, 일본, 그리고 중국의 간섭을 받아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축구를 통해 역사적 한을 풀려는 것은 아마도 일제시대에 우리가 유일하게 일제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스포츠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피지배 민족의 억울함과 한이 우리 피 속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다.
피지배자가 경험하는 특징은 첫째 억울함과 분노를 지닌다는 점이다. 그래서 원수를 갚고자 하는 욕망을 지니게 된다. 두 번째는 피지배 현상이 오래되면 ‘나는 할 수 없다’는 자포자기의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가 상처로 남게 된다. 세 번째는 자신감의 결여로 결국 자신을 믿지 못하며 남을 믿지 못하게 돼 서로 싸우게 된다. 일이 잘 안될 때는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려 그를 비난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영웅을 만들지 못한다. 자기가 핍박을 당한 사람은 성공했을 때 다른 사람을 핍박하는 무의식적 행동을 하게 된다. 이들은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이야기를 보며 즐거워하고 자기가 당한 만큼 남에게 갚아줄 때 환희의 쾌감을 느낀다.
운동경기를 즐기며 나타내는 감정표현은 개인의 인격 양태와 성숙도에 기초한다. 이번 시합이 만약에 우리의 패배로 끝난다면 희생양을 만들어 비난하거나 광적인 팬들에 의해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인기 드라마 ‘상도’의 임상옥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송방 대행수 박주명의 원수를 갚지 않고 조선 상계와 조국을 위해 원한을 승화시켜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피지배 민족의 반갑지 않은 감정상처를 신나는 축구경기 속에서 모두 녹여버리고 자기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을 인정하며 서로를 신뢰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이는 우승보다 값진 월드컵의 성과일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