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신기욱 스탠포드대 교수, 사회학/국제학
미국과의 월드컵 조 예선 경기를 앞두었을 때 옆방에 있는 동료교수가 물었다. 미국과 한국중 어느팀을 응원할 것이냐고.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기 보다는 나한테 좀 짓궂은 질문을 해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다 알면서 뭘 그러냐고 응수했다.
웃고 지나갔지만 사실 이 질문은 미국에 사는 우리에겐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만일 시민권 인터뷰중에 미국과 한국이 전쟁을 하면 어디를 위해 싸우겠냐는 질문에 다 알면서 뭘 그러냐고 한다면 시민권 취득은 아마 포기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한 공격론이 나올 때마다 태평양 전쟁당시 재패니즈 아메리칸이 겪은 심적 갈등과 고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만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우린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겠는가?
요즘 한국에선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미감정이 폭넓게 퍼지고 있다. 특히 지난 동계 올림픽이후 인터넷을 중심으로 미국제품 불매운동에서부터 F-15 구입 반대운동등이 일어나고 있으며, 미국전을 앞두고 미대사관에서는 반미감정의 확산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약 2/3가 미국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약 10년전 비슷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2/3가 미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다고 답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러한 한국민의 태도 변화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이라든가, F-15구입을 둘러싼 의혹, 또 아직도 서울 중심가에 버젓이 있는 미군 사령부등은 시정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과거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하던 용산에 미군 사령부가 있다는 것도 민족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다.
반면 동계올림픽에서 김동성선수가 금메달을 못 딴 것이 반미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김선수 대신 금메달을 차지한 오노가 미국선수라고 해서 미국을 비난하고 반미운동을 부추기는 것은 찬성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최근 브라질과 터키간의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주심이 브라질에 페날티킥을 줘서 터키가 졌다고 지금 터키에는 반한감정이 솟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는 터키에서 일고 있는 반한운동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에서 일고 있는 현상은 꼭 반미라기 보다는 미국의 우월감과 거드름에 자존심 상한 한국민의 민족의식의 표현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반면 사소한 사건을 침소봉대하거나 반미로 선동하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
민족적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국제적 현실을 직시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우리의 나쁜 유산중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사대주의이다. 물론 주체성을 결여한채 강대국의 눈치만 보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옳은 일은 아니다.
반면 사대의 역사적 기원과 역할을 따져보면 비판만 할 것은 아니다. 중국이라는 강대국에 인접한 지정학적 현실이 사대라는 개념과 정책을 나았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대로 비판받는 조선왕조가 5백년이라는 긴세월을 유지한데는 나름대로 국제정치학의 묘수를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대든 반미든 감정이나 규범적 차원보다는 국제정치적 현실속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이 되든 안되든 한반도가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속에 위치해 있는 엄연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적절히 이용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내게 소박한 소원이 있다면 미국과 한국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한미간의 이해를 더욱 더 증진해야 할 것이며 이는 바로 이곳에 사는 우리 코리안 아메리칸의 몫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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