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일여(茶禪一如)라 했다. 차 한 잔이 곧 깨달음이고 선이라. 비약이 좀 심하다 생각되는가. 김노경이 대흥사 일지암을 찾아 차 마시는 궁극적 목적을 물은 데 대한 초의선사의 답은 왜 큰스님들이 그 좋은 말 다 놔두고 "여보게, 차나 한 잔 하고 가시게"란 화두만 던지는가를 헤아리게 한다. 말갛게 우려낸 차 한 잔을 앞에 한 이성윤씨(52·한의사)는 차에 마음을 모으며 초의선사의 깊은 깨달음을 명상한다.
어디 주말뿐일까. 개량 한복이 참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그는 벌써 20년 째, 생활 속에서 다도를 실천하고 있다. 중국, 인도, 일본, 동남아 등 여러 나라의 차를 골고루 마셔봤던 그이지만 지리산 기슭에서 차밭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공급해주는 최상품 우전을 맛 보고부터는 여러 맛이 조화된 우리 차와 다도에 매혹됐다고 한다. 수질이 좋지 않아 물 대신 차를 마셨던 이들의 차 문화가 어찌 정신 수양의 방편으로 차를 마셨던 우리 선비와 스님네들의 차 문화를 따라갈 수 있을까.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그가 들이는 공은 수행에 다름 아니다. 도자기에서 하루를 숙성시킨 물을 정성스레 끓인 후에는 이를 적당한 온도로 식힌다. 다관에 찻잎을 넣고 물을 채워 차 향이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그는 양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얹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미리 덮여둔 찻잔에 빛깔도 고운 차를 따라 내니 천리를 간다는 차 향이 기분 좋게 공간을 채운다. 차는 홀로 마시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지만 그의 오랜 다우인 아내 김봉화씨(51)와 함께 차 마시는 시간을 그는 깊이 사랑한다.
겉 사람 꾸미는 것보다 안 사람 치장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그녀 역시 광목에 꽃 분홍 물들인 한복을 즐겨 입으며 우리 것 사랑에 앞장서고 있다. 남편이 끓인 차 한 잔만 맛봐도 이 사람이 지금 마음 상태가 어떤가를 알 수 있는 건 차의 체신은 물과 찻잎일지언정 건영은 바로 우리들 마음이기 때문일 게다. 젊은 날 때로 떫기도 쓰기도 나던 남편의 차는 평상심으로 고요해진 이후 늘 달고 향기롭다.
해질 무렵이면 공원이고, 바닷가로 다기를 싸들고 티 피크닉, 아니 차 나들이를 떠난다. 보온병의 물을 부어 차를 다려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붉게 물든 일몰로 채색된 찻잔을 바라보는 건 이성윤씨 부부의 또 다른 기쁨. 오랜 세월 차를 마시다 보면 차를 닮아 가는 걸까. 이들 부부의 미소에서는 한 잔의 차처럼 은은한 향기가 난다
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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