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꽃 살구꽃이 만발하는 강원도 영월 구석진 마을이 내 고향이다.
대 여섯살 때 기억이다. 엄마가 손으로 잡지도 않은 채로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얼굴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훔치며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신기해, 나도 한번 해보겠다고 졸랐더니 당연히 들은 채도 안 하실 밖에.
떼쓰는 내 모습이 안스러워 하신 아버지께서 함석으로 손재주를 발휘하시어 조그마한 물동이를 만들어 주셨는데 두 손으로 머리 위 물동이를 잡았는데도 휘청거리다가 결국은 물동이째 엎고 말았다.
당연히 함석 물동이는 하루만에 찌그러진 고물이 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깨끗이 씻어 말린 코 고무신을 신은 발이 신작로 흙먼지 물살로 진흙 범벅이 되버렸다. 어린마음에도 왜 그리 난처하고 속상했던지… 그런데도 엄마는 놀라시지도 않았다.
내 이웃에 사는 또래의 사내아이가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조르곤 했었다. 막상 그집에 가면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데리고 간다. 갇힌다는 마음에 그게 싫어서 집에 간다고 하면 양 팔을 짝 벌려 우리 집에 온 값을 내놓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고 우겼다. 정말 집에 못 가면 어떡하나 몹시 걱정 했던 일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에 그때는 모두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아파도 저절로 낮기만을 바랄 뿐 몹시 궁핍했을 때 였다. 그래도 동네 사람들은 참으로 인정 많았다. 옆집에 살고 있는 동네 오빠는 귀에 고름이 차서 고약한 냄새를 풍겨도 아랑곳 않고 아궁이의 타다 남은 불씨에 콩을 구워 주며 나를 귀여워 해주었다.
동네 오빠들은 개구리 사냥도 하여 껍질 벗긴 다리를 맛있다며 꼬맹이인 내가 예쁘다며 제일 먼저 건네줄 때도 있었다. 저와 안 놀아 준 내가 미웠는지 신작로에서 내게 돌을 던져 이마 가운데가 파여 석가모니 별명을 낳게 한 그 동무는 지금도 그렇게 짖궂을까?
자라면서 동네아이들은 연령 차이가 있어도 모두 친구였으며 한 가족처럼 지냈었다. 한여름 땡볕과 정적 속에 뻐꾸기 노래 소리, 도랑에 물 흐르는 소리를 벗삼아, 참꽃이 만발한 깊은 산 속에 야생 열매를 따러 다니곤 했었다.
산 속에 사는 문둥이가 사람 잡아 먹는다며, 또 뱀에 물릴까봐 염려하시는 엄마의 말씀을 뒤로 하며 절골을 지나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며 산딸기, 머루, 개암등을 따러 행진을 한다. 맑고 바알갛게 오동통한 딸기송이들이 눈앞에 펼쳐져 정신없이 따다가 혀를 날름대는 시퍼런 뱀을 잡을뻔 해 말이 막히고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친구들은 두툼한 양은 도시락을 지녔지만 나는 도토리 잎을 가시로 엮어 딸기를 담았다. 딸기 물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 움켜잡고 도망치다시피 산골짜기를 빠져 나와 야단 맞을까 봐 뱀 얘기는 하지도 못하고 엄마 앞에 딸기를 내밀면 어이없어 하시던 엄마.
지금 어둠이 빨라서 길어진 늦가을 밤을 60년대 동심으로 돌아가 어렸을 때의 해맑은 그리운 추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펼치며, 때묻은 마음들을 낙엽 흩날리듯 날려 보내 볼련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아이들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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