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후 한국사회는 큰 혼란을 겪었다. 일제의 패망으로 인한 정치 공백을 미군정이 메우고 있었으나 좌익에서 우익에 이르는 정당사회단체들이 난립하여 격렬하게 대립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의된 신탁통치안에 대해 좌익과 우익이 찬반으로 갈라져 싸우면서 좌우의 대립이 극심했고 특히 공산당과 공산당의 불법화 이후 지하에 잠복한 남로당의 테러와 폭동, 반란사건은 한국의 운명을 위태롭게 했다. 유엔 감시하에 정부가 수립되지 않았더라면 이 혼란상태가 어떻게 발전했을 지는 모를 일이다.
해방 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에도 한국사회는 혼란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지금과 그 때는 여건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의 틀이 짜여있고 정부가 있으며 미국이 통치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반목과 갈등이 심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역 갈등으로 인한 국민 분열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더니 DJ 정부의 출현과 남북 접근을 계기로 이념적 혼란이 휩쓸고 있다. 이 혼란이 앞으로 좌우 충돌로 발전한다면 해방 직후의 대립양상으로 돌아갈 지도 모른다. 남한의 이런 혼란에 비해 북한은 이념적으로 비교적 일사분란하다는 점도 그 때와 흡사하다.
그러나 이런 혼란과 대립 갈등이 어떤 이념과 신념의 차이 때문이라기 보다는 지나친 집단 이기주의의 표출이라고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예를 들어 정권을 잡은 지역이 권력을 싹쓸이하는 지역주의와 서로 성격이 다르면서도 공동 여당을 유지하고 있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조체제가 그런 것들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에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이념이 같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네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 도덕이나 신념에 기준을 두고 있다기 보다는 나에게 이로우면 옳고 나에게 해로우면 그르다는 이기심에 기준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내 편은 무조건 옳고 상대편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한다. 여야 대립, 지역감정, 노사대결, 의약분규 등 패싸움이 그치지 않고 해결될 수 없는 것이 그 때문인데 사회의 구석 구석에 이런 패싸움이 번져 나라가 온통 패싸움장이 되어버린 듯 하다.
최근 정신문화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사람은 72%가 사회에 해가 되더라도 내 직장에 이익이 되면 협조하겠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똑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미국인은 4%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의 이기적 생각은 배가 침몰하더라도 배 안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인 셈이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가서 일부에서 기복신앙으로 흐르게 된 것도 이기주의에 편승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남북통일을 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통일이란 무엇인가. 여럿이 합쳐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여야가 대립불화하고 지역이 갈라져 있고 정부와 언론과, 또 언론과 언론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 판국이 통일을 지향하는 모습인가. 너와 내가 통일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남북통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통일과 북남통일 마저 혼동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 마저 든다.
더구나 한국이 극우 일본과 극좌 중국의 사이에 놓여있고 미국과 러시아가 극동세력으로 남아있는 것이 100년 전 정세와 다를 바 없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이기심은 살아있으나 정신이 정말 살아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이런 이기주의 때문에 한국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잘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나간다면 희망이 없다. 지금 한국의 고질인 개인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는 법이나 공권력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고질을 고쳐야 하는 정치나 정부도 이기주의의 고질에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익과 주장을 버려야 한다. 이기주의의 고질을 고쳐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부터 나의 이익과 주장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지도력이 나올 수 있다. 오늘의 이 혼란을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에 대해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