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일보에서 가장 읽기를 즐기는 부분은 ‘오피니언’ 페이지이고 그 중에도 크리스 포오만씨의 글은 우리 부부가 함께 그 글맛을 나누며 그 의미를 두고 두고 새기는 점에서 단연 그 분의 글이 최고다. 한국적 모습과 우리의 사고를 정말 재미있게 그린다.
이제 희미해져 가는 옛 기억이나 분별이 곤란해진 한국적 의식까지도, 외국인이라는 배경을 뒷받침 해 아주 선명히 그려낸다.
내가, 미국인 남편에게 포오만씨의 한국 글을 영어로 번역해 읽어주는데는 다른 글 보다 두 세배 더 힘이든다. 그 분의 진의와 글의 기분을 그대로 살려내야 하니까. 하기야 그의 아들 ‘Zachary’의 낙서 얘기를 번역해 줄 때는 남편 Larry가 문득 말하기를 “내 눈에 훤히 보이는군” 하였다.
아이들을 키우며 사노라면 어느 나라에 살건 누구나 겪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나와 남편은 포오만씨의 한국말 솜씨가 아주 부럽다. 그 분도 나처럼 한국인 부인이 글마다 끝손질을 해 주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나는 으례히 영어 글이라면 지금까지도 남편의 최종 심사를 받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 불유쾌한 의존성을 벗어날 날은 언제일까? 정말로 그가 한글로 손수 쓴 글이라면 우리에게 그만큼 부러운 사람은 이 세상에 다시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런 언어솜씨를 넘어서서 그의 ‘한국 것’에 대한 깊은 관심에 더욱 존경스럽다. 어느 한 화두를 택해서 한국인의 입장과 미국인 입장을 보인 글을 읽노라면 마치 ‘줄당기기’를 보는 것 같다.
중간에서 양쪽을 보고 견주어 얘기해 보려는 것이다 - “그게 이렇습니다” 하고.
행여 어느 선생님들이나 종교인들처럼 교훈적이거나 비판적이었다면 그저 제목만으로 스쳐 지나쳤겠지만 그의 얘기는 하나의 ‘괴상한’ 모습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의미되는지 깊이 관찰한 끝에 정성스레 나누는 글인지라 나는 열심히 들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고약한 농담’에서 잘 말했듯이 생판 낯선 사람과 함께 옷 벗고 같은 탕에서 목욕할 수 있는 문화에서 남의 어깨를 약간 부딪쳤기로 고의도 아닌데 그게 무슨 큰 잘못이라고 일일히 ‘Excuse me’인가? 새로 이사온 옆집 사람이 우리집 쓰레기가 어쩌다 자기 집 쪽으로 너무 들어와 있다고 경찰을 불렀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라. 그 괘씸함, 비한국적임, 이웃간의 냉혈성을.
그런데 지난 여름 40년만에 만난 옛 친구가 내 손을 맞붙잡고 앉고 서려는 데에 점차 거북해져서 나중엔 의식적으로 나는 그가 앉으면 서버리고, 그가 내 손을 잡으러 일어서면 나는 일거리를 만들어 멀리 서곤 했던 일이 이제는 웬지 마음 무겁다. 서양인의 고약한 그 ‘사적 공간(Personal Space)’ 개념에 내가 섣불리 오염당해서 딴에 동성애라도 염두에 둔 듯 반가움에 겨워하는 친구 손을 맞붙잡지 못하고 피해 멀리 앉아있곤 했으니…
이게 어디서 얻은 것이냐? 미국에 와서 내가 잃은 것이지!
무엇보다 가장 부러워지는 것은 그 분의 겸손한 마음씨이다. “많이 많이 공부하세요”에서 ‘르완다’말 배울 때의 얘기를 적으면서 111년이나 되는 이조시대 서당식 교육 그대로 선생 입만 보고 뜻도 모른 채 앵무새처럼 반복 복습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선생님께 실례가 되지 않으려고 입을 벌려 천자문을 외우듯 줄곧 반복 복습하는 정경을 말이다.
한국적인 것이 때로 이상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더라도 그것을 그의 미국식 잣대로 재고 맞추려 하지 않고 같은 입장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며 ‘같이 하려는’ 그의 노력과 인내심을 우리 부부가 가장 부러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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