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술자리 풍습에는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노래부르며 술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다. 술판에 흥이 오르기 시작하면 노래 소리는 상 두들기는 장단과 함께 점점 더 커지게 되고 끝에 가서는 가장 큰 장단소리를 내는 사람이 늘 그 자리를 주도하게 마련이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가난하던 시절이어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군용 숟가락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 숟가락은 그 손잡이에 크게 USA 라고 새겨져 있고 크기가 우리 것보다는 거의 두배나 되어서 술상에서 이 숟가락으로 장단 치는 사람이 그 소리가 제일 커서 늘 그 판을 리-드하게 되었었다. 다른 사람들의 장단을 압도하는 큰 소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그 장단에 맞출 수 밖에 없는 일종의 횡포이다. 그래서 그 때는 큰 소리로 자기 고집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USA 숟가락 잡은 사람이다”하고 비꼬곤 했다.
그런데 이 숟가락 풍습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비단 술자리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생활 일반에서도 많은 곳에서 이와 비슷한 횡포를 발견하게 된다. 가까운 예로 토론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우리 나라 사람들은 토론에 아주 서툴다. 많은 사람들이 토론에서 남의 말을 듣기 보다는 자기 주장만 큰 소리로 고집스럽게 떠드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 보면 목소리 큰 사람이 항상 판을 리-드 하게 마련이고 결국 USA 숟가락 가진 술판과 같이 자기 주장만 큰 소리로 떠들고 다른 사람의 입은 막는 결과가 된다.
이 곳에 살면서 많은 나라 사람들을 겪게 되었다. 일찍 민주주의가 발달된 나라 출신일수록 토론에 익숙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반대로 민주주의의 보급이 늦은 곳 출신일수록 토론에 서툴고 자기 주장을 말할 적에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대표적인 토론장이라 할 수 있는 한국 국회의 회의 장면이나 청문회 장면을 보면 그 토론의 수준이 눈물겨울 정도로 저속하다. 거의 대부분이 국회의원이 고래 고래 악을 쓰는 구시대적 웅변을 늘어놓거나 적어 온 원고를 읽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원고를 적어와서 읽기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발언이라고 하기 보다는 남이 써준 원고를 대독하는 꼴이 되어서 그 사람의 진솔한 발언이라 하기 어렵고 토론에 임하는 태도가 아니다.
이곳 미국에 와서 사는 우리도 원로들의 모임이라는 상록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의 모임에서 난장판 싸움이 벌어진 회의를 많이 보아왔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고 또 내가 하는 말에 논리는 결여되어 있는데 목소리만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쪽은 상대방이 아니요 오히려 내 쪽이다. 상대방이 듣지 않기 때문이다.
USA 숟가락 소리로 판을 이끌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남의 말을 듣는 연습부터 하자. 상대방의 말을 알아들어야 내가 이길 수 있는 이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손자병법에 있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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