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인터뷰 했을 때였다. 호칭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인터뷰 전에 비서에게 물었다.
“대통령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대통령님이라고 부르십시오. 뭐하면 ‘대통령께서’도 괜찮습니다”
“대통령님은 좀 어색하네. 각하라고 부르면 안됩니까”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각하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몇 달 전 전직대통령 인터뷰 시리즈를 할 때도 호칭이 마음에 걸렸다. ‘대통령님’이라고 부르려니 마치 현직 대통령 같은 냄새가 나고 ‘각하’라고 부르려니 그 말은 요즘 쓰지 않는다고 하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려니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 같았다. 그래서 YS를 상도동에서 만나기 전에 비서실장 K씨에게 전화걸어 물었다.
“내일 인터뷰 때 호칭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각하라고 하이소”
“요즘은 각하라고 부르지 않고 대통령님이라고 한다던데요”
“그거 어색합니더. DJ가 대통령되면서 새로 만든 호칭인데 우리는 그말 안씁니더”
나중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인터뷰 하기 위해 비서실을 접촉했을 때도 보좌관들은 두 사람을 깍드시 ‘각하’라고 부르고 있었다.
오래전에 포드 전대통령을 팜스프링스 저택에서 인터뷰 했었다. 여비서에게 “인터뷰 할 때 호칭을 뭐라고 하면 되느냐”고 물으니까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라고 했다. “백악관에서 물러 났는데도 미스터 프레지던트냐. 그럼 현직 대통령인 카터(당시)와 포드가 함께 참석하는 행사장에서 두 사람을 모두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미국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계속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몇몇 직책을 제외하고는 보편적으로 쓰이는 존칭이 ‘미스터’다. 백악관 비서실장도 ‘미스터 아무개’지 ‘스미스 실장님’식의 호칭이 없다. 신문사 편집국장도 ‘스미스 국장님’으로 불리지 않고 그냥 ‘미스터 누구’로 불리운다. 하물며 골프클럽이나 낚시회 같은 친목회에서는 ‘회장’이라는 호칭 자체가 없다.
이에 비해 한국인에게는 호칭도 다양하고 매우 민감해 상대방을 잘못 불렀다가는 큰 실례를 범하게 된다. ‘미스터’라는 호칭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 사용하거나 나이가 비슷한 사이에서나 통하지 아랫사람이 윗사람 보고 ‘미스터 박’ 운운 하면 시건방지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인에게는 호칭이 대단히 중요하다. 직책이 마치 그 사람의 first name처럼 쓰인다. ‘이 과장’ ‘박 부장’ ‘오 상무’ ‘김 사장’등 성씨 끝에 직책이 붙어야 대우 받는 것처럼 되어 있다. 심지어 가게주인도 상대방에서 ‘황 사장’ ‘유 사장’ 등으로 불러주는 것이 예의처럼 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 듣기좋은 호칭이 ‘회장’이다. 동창회장이든 골프클럽회장이든 친목단체의 회장직만 맡으면 회장님으로 불린다. 주유소를 3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명함에 회장이라고 찍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사실 ‘사장’이나 ‘회장’은 주식회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타이틀인데 지금은 너무 남용되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앞을 봐도 회장, 뒤를 봐도 회장이다. 전직회장도 기왕에 불러주던 것 깍아 내리기가 거북해 계속 ‘회장’으로 호칭한다. 그러다보니 회장 인플레이션이 한인사회에 번져 ‘회장’으로 불리지 못하면 존경받는 대열에 끼지 못하는 것 같은 풍토가 조성되고 있다.
일종의 거품현상이다. 허풍이다. ‘회장’ 호칭 때문에 단체장 직책에 연연하는 사람도 있고, 회원도 몇 명밖에 안되는 단체를 급조해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사용하는 인사들도 있다. 이 모두가 이민와서 마음이 허전하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커뮤니티의 분위기가 허세, 허풍쪽으로 쏠리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시민권을 받았으면 미국인이 되어야 한다. 어색하더라도 ‘미스터’라는 단어를 존칭으로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