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친구 딸이 결혼을 했다. 결혼식이란 늘 감동적이지만, 그 결혼식에서는 부모에게 드리는 신부의 편지가 공개돼 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제가 처음 집을 떠나 대학에 갈 때 엄마는 ‘집을 떠나면 어려운 일들이 있겠지만 늘 명랑한 태도를 잃지 말아라’ 하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빠는 ‘너에게 부탁할 게 세 가지 있다. 첫째, 한번 시작한 일은 반드시 끝내라. 둘째,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잊지 말아라. 셋째, 결혼은 반드시 한국인과 해라.’ 저는 두 분의 말씀을 지금까지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30년 동안도 잊지 않을 겁니다.…”
결혼식에서 듣는 딸의 편지는 행사를 더욱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친구 부부가 평소보다 한결 훌륭해 보였던 것은 물론이었다.
뉴저지 올드 태판에 살던 때이니, 퍽 오래된 일이다. 캐나다에 사는 한 가족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고 간 적이 있다. 슬하에 딸 둘을 둔 그 부부는 자녀들의 줄리아드 입학을 위해서 뉴욕에 들린 길이었다.
다음 날 새벽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밖을 내다보니 그 집 남편이 우리 집 앞마당을 쓸고 있었다. 말이야 ‘우리 집 앞마당’이지만, 당시 우리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어서 골목 안 여섯 집의 앞마당을 모두 쓸어주는 셈이 된다. 나는 깜짝 놀라서 만류했지만 그는 “제가 늘 하는 일입니다. 저는 집에서도 골목 안을 매일 아침마다 씁니다”하는 것이었다.
저마다 살기 힘들고 바쁘다고 한 목소리를 내는 세상, 아침마다 골목길을 깨끗이 치우는 아빠는 그런 모습을 통해서 딸들에게 자신이 소속한 사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그 분은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실천하는 산 교육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2일 갈보리 한국학교에서 어린이 동요대회가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앙증맞고 귀여웠다. 그렇지만 지정곡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조금은 무료해져서 깜빡 졸게 된다.
시간이 제법 흘러 자칫 사람들이 딱 졸기 좋은 무렵에 9짜리 소년이 청중을 흔들어 깨웠다. 지정곡을 부를 때까지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자유곡으로 ‘둥글게’란 노래를 부르면서 이 녀석은 팔을 흔들고 몸을 기우뚱거리면서 어찌나 씩씩하게 무대 위에서 팡팡 튀던지 졸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나의 대학 후배여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 아이는 이 집안의 외아들인데 벌써부터 ‘나는 이 담에 미국 대통령이 될 거야’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무슨 일에든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 이번 동요대회에도 아이가 우기는 바람에 나오게 됐다는 것이다.
어떤 아빠이길래 이처럼 씩씩하고 자신감 넘치는 아이를 두었을까, 나는 그 아빠가 궁금해졌다. 아이 아빠는 머리를 짧게 깎아 무스로 올린, 미남에 키가 훤칠한 데다가 태권도로 단련된 단단한 몸매의 멋진 신세대 남성이었다. 그런 아빠와 아들은 어떻게 서로를 대할까 궁금해하자, “엄마한테 혼나면 나한테 와서 풀어요” 한다. “어떻게 푸는데요?” “뭐, 와서 신경질내고, 치고 받고 하지요. 녀석도 태권도를 하거든요.” 옆에 있던 엄마가 끼어든다. “아들이라고 하나도 봐주지 않아요. 그냥 똑같이 애들처럼 부자가 서로 치고 받고 딩굴어요.”
참으로 다정하고 격의없는 아빠였다. 우리 세대는 아버지 앞에서는 말도 조심, 행동도 긴장하곤 했는데, 이 부자는 완전히 친구같은 사이였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이들에게 대단히 소중하고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아빠가 아이들과 나누는 정(情)의 유형이야 이렇게 서로 다를지라도, 그 안에 있는 순정이야 마찬가지이지 않겠는가? 아빠의 날, ‘원더풀, 아빠의 순정(純情)’.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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