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인회와 사회단체 주관으로 일본 역사왜곡에 대한 시위가 있었는데 그중 정신대 문제도 시인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사실이 증명한 엄청난 과오로 반성 못하는 일본인의 태도에 우리 민족은 보고만 있어서는 20만 여성의 희생된 이 종군위안부로 희생당한 20만의 영혼을 어찌 달랜단 말인가.
정한론에 입각한 청일전쟁(1894~1896)과 일로전쟁(1904~1905)에 승리한 일본은 을사보호조약을 맺고 조선을 사실상 식민지화 하므로 일본왕의 직계인 총독으로 하여금 정부와 군무를 총괄케 하여 헌병과 경찰관에게 87개 항목에 달하는 직결권과 강제집행권을 부여하고 식민지 지배를 반대하는 우리 조상들을 탄압하고 학살함으로써 무조건 항복을 강요당했다.
그 후 만주사변(1931~9), 철도폭파사고를 중국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상해사변(상해침입 1932. 7)등의 사변을 일으켜 승리했던 바 이에 도취한 장병들이 도처에서 부녀자 강간사건이 발생하였고 1937년 남경 대학살을 계기로 세계 역사상 장기화되는 유례없는 종군위안부 제도를 운영했다.
일본에서만 충당함은 사회문제가 될 우려가 있어 일본 식민지 통치하에 있던 15세 이상 어린나이의 우리 여성을 군 관리하에 헌병, 경찰관, 면장등으로 하여금 주로 농촌지역의 빈농의 딸들을 노예처럼 사냥하듯 납치했던 것이다.
일본은 이 사실을 일부 이익을 도모하는 사설업자의 행위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일본의 양식인사나 당시 직접 취급을 담당했던 병무담당자들이 사실을 시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 법령전서에서도 직령(#519)으로 여자 근로령이 발포되어 관 주도하에 또는 점령지 7개국(버마, 네덜란드,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 조선(지금의 한국,북한)) 등에서 20만명(그중 80%는 조선인)에 달하는 꽃다운 어린여성들을 군 명령에 의해 감언이설로 꼬여 전쟁터로 끌고가서 일선장병의 성욕처리용구로 사역하는 종군위안부가 되어 일생 끔찍하고 돌이킬 수 없는 가시나무길을 걸어가게 한 것이다. 이는 일본군 250명에 위안부 1명꼴의 비율이며 현재 생존자는 1,000명 가량 추산되나 모두가 고령으로 과거의 치욕을 감당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이 끔찍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만 되겠다.
이같은 사실들을 여러 건 접하면서 같은 여성으로 분개와 울분을 참을 수가 없다.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금수보다 못한 그러한 일들을 자행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일본은 아직까지도 그 만행에 대하여 일고의 반성도 없으니 더 개탄스럽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이 엄청난 일들을 진정시키며 자제하고 있다. 진실로 사실 인정을 통한 참회개를 모르는 인간은 짐승보다 못해질 수 있다는 것이 만고의 진리이다. 아직도 생존한 한맺힌 그분들에게도 예수님을 영접하는 귀한 믿음의 역사를 통하여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소망을 갖게되기만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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