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메릴랜드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민 1세대의 떨림, 작은 가게 간판 하나 걸며 품었던 아메리칸 드림, 자녀 손을 잡고 한글학교로 향하던 부모님들의 모습, 서로의 손을 붙잡고 공동체를 일궈낸 한인들의 눈물과 웃음…”
지난 반세기 메릴랜드 한인사회는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시작해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주류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우뚝 섰다. 볼티모어의 작은 업소 한 칸에서 시작된 이민의 씨앗은 이제 메릴랜드주 의회에서 ‘미주 한인의 날’이 공식 제정되는 역사적 결실로 꽃을 피웠다. 이것은 단순한 이민의 역사가 아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위대한 인간 승리의 서사다.
볼티모어에서 시작해 주 의회 입성까지
절망을 희망으로 일군‘위대한 여정’
■1970년대
볼티모어에서 피어난 이민의 싹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아시아계 이민의 문이 열려 1970년대 이민 물결이 거세지면서 한인들이 볼티모어 곳곳에 뿌리를 내리며 정착이 본격화됐다.
당시 볼티모어 시내에는 한인 이민 1세대들이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생활을 시작, 한인 상권이 형성됐다. 한인 1세대는 언어도 서툴고 자본도 부족했지만 하루 16시간씩 일하며 세탁소·식료품점 등을 차례로 열었다. 한인회가 설립되고 한인교회들이 문을 열면서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교회는 예배 공간을 넘어 언어를 배우고 정보를 나누는 생존의 터전이 됐다. 초기 볼티모어 한인 커뮤니티를 이끈 교회들은 한글학교를 운영하며 2세 교육의 기초를 다졌고 이는 이후 한인사회 성장의 든든한 뿌리가 됐다.
■1980~90년대
개척과 확장의 시대…하워드 카운티로 진출
1980~90년대 한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한인사회의 생활권은 볼티모어 시내를 넘어 교외 지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자녀 교육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한인 특유의 교육열이 이주 방향을 결정했다. 전국 최고 수준의 학군으로 손꼽히는 하워드 카운티, 특히 엘리콧시티로 한인 가정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새로운 문화권이 형성됐다.
이 시기 식당·마켓은 물론 학원·병원·법률·금융 등 전문 업종이 빠르게 성장했다. 한인 의사·변호사·회계사들이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며 경제적 자립기반이 한층 탄탄해졌다. 볼티모어에서 시작된 한인 상권은 이제 하워드 카운티를 중심으로 재편되며 메릴랜드 한인사회의 새로운 중심축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90~2000년대
40번 도로의 기적…‘코리안 메카’의 탄생
엘리콧시티를 관통하는 40번 도로(US Route 40) 주변은 명실상부한 한인사회의 상징적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 롯데 플라자가 들어서며 형성된 한인타운은 동쪽 롤링 로드의 베세토 쇼핑센터부터 서쪽 파인오차드 레인의 베다니 40 쇼핑센터까지 광활하게 뻗어 나갔다. 한식당·한국 마켓·노래방·미장원·베이커리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며 타 지역 한인들도 즐겨 찾는 ‘메릴랜드의 코리아타운’이 탄생했다.
이 시기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공동체적 도약’을 이룬 때였다. 메릴랜드 한인 문화축제가 자리를 잡았고 한인회·노인센터·체육회 등 다양한 단체들이 활발히 활동하며 공동체의 저력을 키웠다. 한인 언론도 메릴랜드 지역사회의 소통 창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2010~20년대
정치적 도약과 ‘미주 한인의 날’ 제정
2010년대를 지나며 한인사회는 주류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거듭났다. 2014년 마크 장·데이비드 문 메릴랜드주 하원의원이 탄생하며 한인 정치력을 증명했다. 특히 마크 장 의원은 앤아런델 카운티 역사상 첫 아시아계 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12년간 봉직하며 하원 세출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역임했으며 현재 주 상원의원 도전에 나서 있다. 한국계 유미 호건 여사의 활동과 래리 호건 전 주지사의 행정도 한인 커뮤니티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됐다.
2016년 엘리콧시티 일대가 ‘코리안 웨이(Korean Way)’로 공식 명명됐으며, 2021년에는 ‘코리아타운’ 조성으로 한인 문화 거점이 공식화됐다. 그리고 2026년 마침내 메릴랜드주 의회에서 매년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Korean American Day)’로 공식 지정하는 역사적인 법안이 통과됐다. 한인 커뮤니티가 하나로 뭉쳐 이뤄낸 이 성과는 초기 이민자들의 희생과 차세대의 열정이 만들어낸 위대한 이정표다.
■ 50년의 발자취, 다음 50년의 도약을 향해
볼티모어의 작은 가게에서 시작된 메릴랜드 한인사회의 여정은 이제 반세기를 훌쩍 넘어섰다. 언어의 장벽도, 차별의 아픔도, 경제적 어려움도 모두 이겨낸 이민 1세대의 땀방울은 오늘날 주 의회에 당당히 서는 차세대 지도자들의 자양분이 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네이처셀 등 한국 첨단 기업들이 메릴랜드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오늘, 그 선택의 배경에는 메릴랜드 한인 커뮤니티가 반세기에 걸쳐 쌓아온 신뢰와 네트워크가 자리하고 있다. 이제 1세대가 일군 터전 위에서 2·3세대가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날개를 펼치고 있다. 지난 50년의 발자취를 등불 삼아, 메릴랜드 한인사회의 다음 50년은 더욱 찬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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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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