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y Cassatt: An American in Paris-National Gallery of Art-
▶ ‘메리 카사트 서거 100주년 기념전’
이 전시는 단순한 기념전이 아니다. 메리 카사트(1844-1926)의 탄생이나 활동의 연대기를 따라가는 대신, “미국인 여성화가가 19세기 파리에서 어떻게 현대성을 획득했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둔다. 작가의 사망 100주기를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약 40점의 회화, 드로잉, 판화를 통해 카사트의 예술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밀도는 매우 높다. 특히 내셔날 갤러리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카사트 컬렉션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전시 전체가 마치 한 작가의 내면을 따라 걷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펜실베이니아 출신 카사트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파리에서 40년 동안 활동한 가장 혁신적인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흔히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화가’로 알려졌지만, 이번 전시는 그러한 통념을 조심스럽게 해체한다. 카사트가 반복적으로 여성과 아이를 그린 이유는 단순히 모성애를 이상화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남성화가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여성의 사적 공간과, 심리적 세계를 탐구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점을 전시는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실제로 작품 속 여성들은 관람자를 향해 미소 짓거나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읽고 아이를 돌보고 목욕을 시키고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카사트는 여성들을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로 그렸다.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1905년경의
이다. 황금빛 옷을 입은 여성이 아이와 함께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은 전형적인 모자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여성의 시선은 내면을 응시하며,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해바라기와 노란색 계열은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의 상징색을 연상시킨다. 최근 일부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을 단순한 모성 이미지가 아니라 여성의 자의식과 미래 세대를 암시하는 상징적 그림으로 읽고 있다.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성취는 카사트의 판화 작업을 비중있게 다룬 점이다. 대중은 그녀를 유화 중심의 인상주의 화가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녀는 동시대 가장 실험적인 판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1890년 파리에서 일본 유키요에 판화를 접한 뒤 그녀의 작업은 급격히 변한다. 평면적인 색면, 대담한 구도, 비대칭 화면은 이후 작품에서 중요한 특징이 된다. 전시장에는 완성작뿐 아니라 드로잉, 시험 인쇄본, 여려 단계의 증거물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카사트의 치밀한 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녀가 단순히 우아한 일상 장면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끊임없이 형식 실험을 시도했던 근대적 예술가였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미국인으로서의 카사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녀는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살았고 인상주의 그룹과 활동했지만, 프랑스 사회에서는 늘 미국인으로, 미국에서는 프랑스적 화가로 인식되었다. 이 전시는 바로 그 경계적 정체성에 주목한다. 그녀는 미국 출신이라는 위치 덕분에 오히려 파리 사회의 규범을 일정 부분 비껴갈 수 있었고, 그 거리감은 독특한 시선을 가능하게 했다. 전시에 함께 마련된 아카이브 섹션는 그녀가 미국 수집가들에게 인상주의를 소개하고, 미국미술계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 자리는 조용하고 집중력 있게 한 작가를 다시 읽게 만든다. 최근 미술계가 여성 인상주의 화가들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하는 흐름 속에서, 이번 전시는 카사트를 근대성과 여성성, 그리고 시각적 혁신을 동시에 탐구한 핵심작가로 매김한다. 관람 후 남는 것은 화려한 인상주의 색채보다도, 카사트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끝내 독립적인 예술 언어를 구축해낸 과정에 대한 깊은 존경이다.
<도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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