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두 눈은 앞에 달려 있다. 이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동물들은 주로 두 눈이 머리 양옆에 달려 있다. 물고기를 보더라도, 송아지를 보더라도 머리 옆에 붙어있다. 하긴 피카소가 그려낸 사람도, 순정 만화에 등장하는 사람도 눈이 귀 쪽에 붙어있긴 한다.
두 눈이 양옆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한쪽 눈이 거의 180도에 가까운 영역을 커버할 수 있으니까 두 눈으로 전방위를 모두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나 공격이 어느 방향에서 들어와도 미리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눈이 앞에 달려 있는 사람은 앞만 볼 수 있다. 앞쪽 180도만 커버할 수 있다. 뒤쪽은 완벽한 사각지대다. 뒤쪽을 보려면 머리를 돌려야 한다. 기습당하기 딱 좋다. 그래서 등 뒤에서 공격하는 것은 예에 어긋난다고 한다. 서부극에서 권총으로 결투할 때도 몇 발짝을 걸어간 뒤, 뒤를 돌아 서로를 보면서 총을 쏜다. 뛰어가는, 도망가는 사람의 등 뒤에 총을 쏘는 것은 비겁한 짓으로 여겨졌다. 죽고 사는 문제에 예의까지 따질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뒤쪽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앞쪽 시야에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했을까? 뒤쪽을 보지 못하는 대가보다 앞쪽만 봐서 얻는 이익이 더 컸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앞쪽만 봐서 얻는 이익은 바로 두 눈의 시야가 앞을 향하면서 겹치게 된 ‘입체시’에서 온다. 두 눈의 시야가 겹치면서 두뇌는 각각의 눈이 보내는 신호로 입체적인 세상을 구성한다.
한쪽 눈만으로는 입체적인 세상을 가늠할 수 없다. 두 팔을 가능한 한 서로 멀리 떨어지도록 벌린 다음 한쪽 눈을 감아보자. 그리고 양손의 둘째 손가락을 펴서 점점 가까이 가져오면서 서로 만나도록 해보자.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입체적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눈을 뜨고 하면 세상 쉬운 일이다. 그래서 무협지에 등장하는 애꾸눈 검객이 그토록 엄청난 무공을 가진 것이다.
우리는 두 눈이 앞을 향하면서 시각 세상을 스테레오로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는 우리뿐만이 아니다. 앞을 향하는 두 눈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영장류의 특징이다. 8천만 년 전에 등장한 영장류는 나무 위에서 진화의 역사를 시작했다. 흔히 나무 위에서 나뭇가지를 정확히 잡기 위해 입체적인 거리를 가늠할 수 있는 눈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무 위에서 곡예를 부리는 청설모나 다람쥐도 눈은 옆에 달려 있다. 왜 하필 영장류만 눈이 앞으로 모였을까? 인류학자 맷 카트밀(Matt Cartmill)은 이를 ‘시각적 포식자 가설’로 설명한다. 사자나 올빼미처럼 사냥하는 포식자들은 먹잇감을 정확히 조준하기 위해 눈이 앞에 있다. 초기 영장류 역시 단순히 나무를 타기 위해서가 아니라, 숲의 하층부에서 은밀하게 다가가 곤충이나 작은 동물을 낚아채는 ‘포식자’로서의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눈이 앞으로 모였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조상들이 숲을 떠나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탁 트인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되었다. 두 발로 서서 걷게 된 초기 고인류에게, 등 뒤를 볼 수 없는 시야는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풀숲에는 맹수 포식자들이 언제든지 먹잇감으로 삼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뒤통수에 눈이 없는 인류는 언제 기습당할지 모르는 끔찍한 공포 속에서 매일매일을 살아남아야 했다.
인류가 이 위기 속에서 몇백만 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사회성’이다. 입체적인 세상을 얻은 대가로 뒤를 볼 수 없게 된 우리는, 내가 볼 수 없는 등 뒤의 세상을 나를 마주 보는 동료의 눈에 맡겼다. 여기에 특별한 진화적 증거가 있다. 바로 눈의 ‘흰자위(공막)’다.
공막은 침팬지나 고릴라와 같은 유인원도 가지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인간의 공막은 넓고 뚜렷하다. 내가 지금 어디를, 무엇을 보고 있는지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나를 마주 보는 동료의 눈을 보면서 나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고도 내 등 뒤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가 유독 사회성이 강한 이유, 특히 인류가 지금의 거대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동료에게 의지하는 굳건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내 뒤를 부탁해”는 전쟁 영화에서 주인공이 장렬하게 전사하면서 남기는 마지막 한 마디가 아니라, 수백만 년 동안 서로의 등 뒤를 지켜주면서 사바나 초원과 빙하기 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 조상들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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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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