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 부채가 앞으로 몇 달 후에 39조 달러에 도달한다. 그리고 아마도 연말에는 40조 고지에 오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만큼 태평하다. 어찌보면 이해할만한 일이다. 작가겸 정치 선동가인 업턴 싱클레어(1878-1968)의 말을 빌리자면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해야 봉급을 받는 사람에게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시키기란 대단히 어렵다.”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한 의회의 초당적 합의는 당파적 갈등보다 더욱 우려스럽다. 양대 정당은 맹렬한 단기적인 정치적 고통없이는 장기적인 재정적 이익도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따라서 오늘날 의원들은 그들의 임기 중에 심각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만큼 후일에 나올 결과 따위는 모른 척하자는데 동의한 듯 보인다.
2016년, 한 예산전문가는 산더미처럼 쌓인 부채를 방치할 경우 발생할 심각한 재정적 결과에 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20분간 브리핑을 하게 됐다. 그러나 브리핑이 시작된지 불과 5분만에 트럼프는 “그래, 그렇지만 그때쯤에는 나는 이미 이 자리에 없을거야”라고 말했다.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은 그가 대체하겠다고 약속한 주류 정치권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고방식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있는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꿋꿋하게 경고음을 내고 있다. 단순한 추가 정보 제공을 통해 의회를 움직여 재정의 암울한 미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CRFB는 최근에도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여섯 가지의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들 중 다섯 개는 극적이다. 여섯 번째 시나리오는 조금 덜 심각하지만 가장 우려스럽고 실현 가능성 또한 가장 높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부채는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미국의 재정전망에 불안감을 느끼는 투자자들은 국채매입을 유도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부채증가를 가중시키는 도화선에 스스로 불을 붙이는 셈이다. 고금리는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세수를 줄이는 동시에 부채상환을 위한 정부의 지출을 늘린다. 신규 부채에 대한 금리인상은 더 규모가 큰 기존 부채의 가치를 대폭 축소시킨다. 이렇게 되면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재무건정성이 약화된다. 이들은 너무 커서 망하게 내버렬 둘 수 없는 이른바 ‘대마불사’ 기관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구제금융이 불가피하고 여기에 경기부양을 위한 지출이 맞물리면서 금융위기가 악화된다.
천문학적 액수의 부채는 인를레이션 위기를 유발해 채권자에게 가치가 하락한 달러로 빚을 상환함으로써 기존 부채의 실질 가치를 축소시키도록 장려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투자자들의 기대에 반영될 것이고, 이들은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R>G 상황이 따라온다. 이처럼 부채에 적용되는 이자율이 경제성장률을 초과하면 금리상승이 경제성장을 억누르면서 위기가 심화된다.
갑작스런 대규모 세금인상이 지출삭감과 결합하면 긴축위기가 발생한다. 실업률이 증가할 것이고, 연방준비제도에게는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 침체에 대응할만한 능력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풍요에 대한 끝모를 기대에 길들여져 사실상 이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는 국가에서 긴축정책은 극히 드문 일이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선진개발국인 G7 국가들 가운데 보통선거 시대 이후 긴축정책으로 국가 부채를 크게 떨어뜨린 사례”는 (1990년대 캐나다에서) 딱 한번 있었다.
통화위기는 달러화 가치하락으로 인해 외국 정부와 민간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에서 벗어나 자산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결과로 발생할 수 있다. 채무불이행 위기는 발생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원금만 계속 상환하고 이자는 지급하지 않거나 정부가 일부 부채를 아예 상환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구조조정’을 불러온다.
가장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가장 불길한 결과는 점진적 위기일 것이다. 2021년도의 채무상환액은 연방세수의 10% 미만이었으나 2015년에는 18%로 늘어났다. 점진적 위기는 장기화될 경우 국민 사기 저하, 지속적인 경기침체, 연구개발부문 투자 감소, 사회적 정체, 재능있는 이민자들의 기업가적 역량 기여도 축소 및 미국의 지정학적 영향력 감소로 서서히 이어질 것이다.
점진적 위기는 미국 정치문화의 회복적 개혁을 촉발할 수 있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마비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대신 이같은 정치 문화는 더욱 강한 독성을 품게 될 것이다. 정치권력은 한 정파의 이익이 다른 정파의 손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제로섬 게임처럼 절박하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쟁취되고 행사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더욱 강력해지고, 분열적이 되는 동시에 정당성이 약화된다. 화폐는 모든 사람이 매일 정부와 접촉하는 수단이며, 이는 정부가 발행하는 화폐는 신뢰할만하다는 암묵적이고도 명백한 약속을 전제로 한다.
인플레이션보다 더욱 신속하게 중산층 국가를 뒤흔드는 요인은 없다. 인플레이션은 앞서 언급한 모든 위기의 구성요소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통화가 가치저장 수단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은 범죄, 지금의 추방사태와 그 외의 다른 무질서 못지 않게 대중을 불안하게 만든다. 인플레이션은 무질서다. 사방 어느 곳에나 조용히 퍼져있는 인플레이션은 특히나 불길한 느낌을 주고, 모든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디스토피아적(dystopian)’은 ‘유토피아적(utopian)’의 반대말이다.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 어원에서 유래한 것으로 상상의 장소인 ‘어디에도 없는 곳’을 의미한다. 미국 국채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결과는 언젠가는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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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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