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양정훈 순환기내과 교수가 심장성 쇼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지난달 12일, 84세의 고령 환자가 ‘심장성 쇼크’로 삼성서울병원에 실려 왔다. 심장성 쇼크는 심장 펌프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온몸으로 혈액을 보내지 못하는 위급한 상태다. 통상 100㏄의 혈액이 들어왔을 때 55㏄ 이상을 뿜어내야 정상인데, 이 환자의 심장은 고작 25㏄밖에 보내지 못해 생명이 위태로웠다. 양정훈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가 속한 중재시술팀은 이 환자에게 한국 최초로 ‘임펠라’ 시술을 시행했다. 임펠라는 심장 좌심실 안에 직접 삽입하는 초소형 혈액 펌프다. 작은 관 형태의 기기가 심장 내부에서 모터를 돌려 좌심실에서 빨아들인 혈액을 대동맥으로 뿜어준다. 시술은 성공적이었고, 환자는 현재 회복 중이다.
임펠라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이미 도입된 기기다. 심장성 쇼크 치료에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보다 더 널리 쓰인다. 하지만 한국에선 3,0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시술 비용과 건강보험 급여 등 제도 문턱에 막혀 도입이 한참 늦어졌다. 한국 첫 시술을 집도한 양 교수를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났다.
-날씨가 추워지면 심장질환 환자가 늘어난다고 합니다.
심장과 혈관은 하나의 파이프로 연결된 엔진과 배관이라고 보면 됩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우리 몸의 말초혈관은 체온 유지를 위해 수축해요. 혈관이 좁아지면 압력이 상승하는데, 이를 의학적으로 ‘후부하(Afterload)’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심장 입장에선 좁아진 관으로 피를 보내기 위해 더 강한 힘으로 펌프질을 해야 하니 과부하가 걸리는 셈이죠. 평소 심장 기능이 90점(100점 만점)인 사람은 견딜 수 있지만, 50~60점 정도로 기능이 떨어져 있던 사람은 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급격히 상태가 악화할 수 있어요.
-‘심장성 쇼크’가 그럴 때 생기는 겁니까.심장 펌프 기능이 뚝 떨어져서 뇌와 콩팥, 간 등 주요 장기에 산소와 영양분이 섞인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해요. 심장 혈관이 막히는 급성 심근경색이 원인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심장 근육에 염증이 생기는 급성 심근염이나 만성 심근병증의 악화도 원인입니다.
-심장성 쇼크의 전조 증상은 무엇이 있습니까.대부분 급성 심근경색 증상과 겹쳐요. 가슴을 돌로 짓누르는 것 같은 통증과 쥐어짜는 느낌이 대표적입니다. 주의할 점은 ‘소화불량’으로 오인하는 경우예요. 심장 혈관 중 좌측 관상동맥이 막히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은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지만, 우측 관상동맥이 막히면 상복부가 불편한 비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흉통보다는 체한 것 같은 느낌이나 구토, 속 쓰림 등이 나타납니다. 고령이나 당뇨병 환자는 통증을 잘 못 느끼기도 하고요. 심장성 쇼크는 초반 12시간 안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예후의 50%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임펠라는 기존에 쓰던 에크모와 어떻게 다릅니까.에크모는 심장과 폐의 기능을 동시에 대신하는 훌륭한 장비지만 구조적 한계가 있어요. 에크모는 다리 정맥에서 피를 빼내 산소를 입힌 뒤 다리 동맥으로 다시 넣어줍니다. 즉, 피가 다리에서 심장 쪽으로 거꾸로 올라가는 거죠. 심장은 위에서 아래로 피를 뿜어내려는데, 에크모는 아래에서 위로 피를 밀어 올리니 내려오는 심장 혈류와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이는 지친 심장에 더 큰 부담을 줘요. 반면 임펠라는 아주 작은 모터 펌프를 심장의 좌심실 안에 직접 넣습니다. 그리고 심장이 피를 뿜어내는 방향 그대로 대동맥으로 피를 쏴주죠. 생리적인 혈류 방향과 일치해 심장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전신 순환을 돕는 거예요.
-약물 치료보다 시술이 더 효과적인 점은 무엇입니까.쇼크 상황에서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나 심장을 억지로 뛰게 하는 강심제는 근본 치료가 아닙니다. 약물을 과도하게 쓰면 오히려 말초혈관이 망가지거나 독성으로 사망할 수도 있어요. 반면 임펠라 같은 장치는 심장이 쉴 수 있는 안전한 시간을 확보해주죠. 그사이에 막힌 혈관을 뚫거나 염증을 가라앉혀 심장 스스로 다시 뛸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급성 심근염에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현재는 심근경색에 따른 심장성 쇼크에만 임펠라를 쓸 수 있는데, 중·고등학생 같은 젊은층에서 발생하는 심장성 쇼크는 급성 심근염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초기에 급한 불만 잘 꺼주면 심장이 완전히 회복돼 수십 년을 건강하게 살 수 있어요. 고령자의 심장성 쇼크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은이들을 살려내는 건 그들이 잃어버릴 뻔한 50~60년의 시간을 되찾아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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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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