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생활의 현장이다. 가족과 이웃이 그렇다. 함께 할 때 활기를 찾고 새 힘을 얻기도 한다. 마치 숯이 모일 때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따로 떨어져 있으면 얼마 못 가서 있던 불꽃도 곧 사라지게 된다.
서울 생활을 접고 얼마 동안 스위스에 머물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가게를 들어가는 데 한 중년 남자가 앞서 들어가고 있었다. 필자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가게 문을 열고 뒤따르고 있던 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기다려 주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나를 뒤따라 가게로 들어왔다. 이 일은 서울에서 겪지 못한 일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백화점을 들리거나 가게 문을 들어 설 때 앞에 가는 사람이 뒷사람을 위해서 문을 열고 기다려주는 일이 자주 눈에 띄곤 했다. 뒤따라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는 잔잔한 충격이었다.
스위스에는 미그로(Migros)라고 하는 큰 가게가 곳곳에 있다. 이 유통업체는 스위스 취리히에서 1925년에 시작되었다. 이 업체를 창립한 두트바일러(Duttweiler)는 알프스산맥 골짜기에 띄엄띄엄 산재한 마을 주민들이 생필품을 쉽게 살 수 있는 길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는 처음에는 트럭에 물건들을 싣고 마을마다 찾아가서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판매했다. 생산지에서 직접 물건을 사 와 소비자에게 판매함으로써 낮은 가격으로 물건들을 공급할 수 있었다. 골짜기의 주민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았다. 미그로는 지금 스위스 최대의 유통업체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는 초창기 창립 정신을 지키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주민들에게 편리하고 값싸게 생필품을 판매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대를 이어 지켜지고 있다. 온갖 생필품을 판매하지만 담배와 술은 지금까지 판매하지 않는 것도 창립자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후손들의 노력 결과이다.
어느 날 관광차 한국에서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이 가게를 들렸다. 친구들은 한국에 돌아가 나누어 줄 선물들을 잔뜩 골라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알프스계곡에서 자라는 약초를 원료로 만든 사탕, 귀엽게 생긴 스위스제 탁상시계, 간단한 주방 기구 등을 계산하던 점원이 계산대 앞에 서 있던 친구에게 조용히 양해를 구하였다.
“죄송하지만 이 물건은 두 개만 남겨 주세요… 혹시 이 물건을 사러 멀리서 오는 손님이 못 사고 돌아갈까 걱정이 되어 서요” 그 친구는 대신 다른 물건을 샀다. 그날 저녁 우리는 밤이 늦도록 가게 점원의 요청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한 친구는 고객이 물건을 사겠다는데 막은 것은 무례한 행동이라고 성토했다. 또 한 친구는 문화의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배려하는 마음은 누군가에게 양보할 때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가는 사람이 먼저 가게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하여 길을 비켜 주는 것은 배려하는 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이다. 누군가 더 필요한 사람을 위하여 양보할 수 있는 사회가 어느 때보다도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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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두 서북미수필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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