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싱 범죄 온상이 된 캄보디아
▶ 캄보디아 납치·감금 신고 330건 “단지 안에 갇혀 외출 꿈도 못꿔”
▶ 해외 취업 빙자해 고액알바 제시
▶ 동행 미끼로 여행객 유인하기도
▶ 동남아 대상으로 하다 타깃 변경 2022년 이후 사기 범죄 성지 돼
▶ 우리나라 당국 미온적 대응 도마
지난해, “월 1000만 원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해외 아르바이트 공고를 본 20대 A 씨는 취업난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봤다. 숙소와 항공권까지 제공한다는 말에 그는 망설임 없이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프놈펜 인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상황은 달라졌다. 마중 나온 현지인들을 따라 탑승한 승합차가 멈춰 선 곳은 ‘프리미엄 숙소’가 아닌, 장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제서야 A 씨는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긴 뒤였다. 이후 그는 이곳에서 ‘몸캠 피싱’ 범죄를 강요받으며 사실상 감금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최근 A 씨와 같이 고수익 취업 자리 알선에 속아 캄보디아로 갔다 억류된 한국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A 씨가 속한 조직의 조직원 80명 중 대부분이 맡고 있는 보이스피싱 업무의 경우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A 씨는 “외모를 관리해야 하는 몸캠이나 로맨스스캠 업무 담당 여자 직원들은 퀸사이즈 침대에서 잘 수 있었지만 남자 직원들은 매트리스도 없는 2층 침대에 여러 명이 구겨져 들어가 새우잠을 잤다”며 “사무실 안에 침대가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의 개념도 없었고 식사도 도시락을 시켜 먹었기 때문에 아예 외출 자체를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A 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약속받은 월급의 10분의 1도 지급받지 못했다. A 씨는 조직이 와해된 덕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일부 직원은 실적이나 각종 벌금을 빌미로 생긴 빚으로 인해 조직에서 끝내 빠져나가지 못해 다른 조직으로 옮겨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캄보디아에서 납치 또는 감금됐다는 신고는 올해 들어 8월 말까지 330건 접수되는 등 최근 한국인을 상대로 한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범행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8월 캄보디아 캄폿주를 방문한 22세 한국인 관광객이 현지 범죄 조직에 납치돼 고문 끝에 숨지는 사건이 있었다. 캄보디아 현지 경찰은 사망 증명서에 사망 원인으로 ‘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을 적시했다. 9월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한 50대 한국인 남성을 납치해 고문한 중국인 4명과 캄보디아인 1명이 현지 경찰에 체포된 바 있다.
범죄 조직이 인력을 모집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우선 우리나라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이나 구인·구직 사이트에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해외 취업 빙자 게시글을 올려 피해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이들은 월 1,000만 원 이상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하며 비자 발급과 항공권 제공, 숙식 제공, 외출 자유 등의 조건을 내걸며 취업시장에서 외면당한 우리나라 2030세대를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
다른 방법은 캄보디아가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국가라는 점을 이용해 해당 국가를 방문하는 여행객에게 심부름을 부탁하고 사례비를 지급하겠다고 하며 조직이 있는 곳으로 유인하거나 동행을 미끼로 조직원을 보내 납치하는 방식이다.
캄보디아는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인 연간 125억 달러(약 17조 원)가 보이스피싱 등으로 벌어들인 돈일 만큼 사실상 사기가 국가 기간 사업의 역할을 하고 있다. 캄보디아가 사기의 성지로 떠오른 것은 2022년 이후다. 당시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으로 캄보디아에 자본을 투입해 도로·항만·리조트·카지노 등을 건설했다.
특히 시아누크빌은 관광·카지노 특화 도시로 계획돼 중국 자본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코로나19 이후 중국 정부가 태도를 바꿔 도박을 금지하고 자본을 빼는 바람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이에 이미 구축된 인프라를 노리고 범죄 조직이 들어와 사기를 사업화시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캄보디아 내 범죄 조직들이 다수 존재하는 도시들은 대부분 리조트나 카지노를 근거지로 삼고 있다. 시아누크빌의 경우 빅토리파라다이스리조트 등이 범죄 조직의 거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캄보디아 유력 정치인이나 경제계 거물, 중국계 캄보디아 부동산 그룹 소유주 등이 범죄단지 운영에 연관돼 있어 치안 당국이 단속을 하기는커녕 조직과 결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처음부터 캄보디아 범죄 조직이 우리나라 국민을 타깃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당초 인접 국가인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미얀마·태국 등 인접 동남아 국가 청년들을 상대로 이 같은 인신매매를 자행해왔다. 2022년까지 발행된 각종 국제 단체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납치된 피해자의 국적은 중국·방글라데시·베트남·인도네시아·에티오피아·인도·케냐·네팔·필리핀 등으로 다양했다.
이에 2022년 대만 정부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등에서 억류된 자국민 246명을 구출하는 등 각 국가가 대응에 나섰다. 해당 국가에 범죄 조직의 수법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자 시선을 우리나라나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로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외교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금 상태에 놓인 피해자가 한국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현지 경찰에 신고하라”는 답변이 돌아오거나 근무시간이 아니라며 도움 요청을 외면하는 등 안일하게 상황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에 외교부는 ‘캄보디아 경찰이 본인 직접 신고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해명을 내놓았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 국민의 실종 접수를 위해 ‘감금된 사진’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현지 경찰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 국가 차원의 제도적 대응 필요성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캄보디아 사태와 관련해 “외교적으로 총력을 기울이라”고 11일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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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채민석·신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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