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이었나. 노르웨이 재무장관이 갑작스럽게 걸려온 트럼프의 전화를 받은 것이.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화의 주제는 관세문제인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의 관심은 노벨상이었다고 하던가.
‘알래스카 정상회담 결과 트럼프의 노벨상 수상의 꿈은 일단 수포로 돌아갔다.’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다. ‘정상회담은 대신 푸틴이 원하던 것을 안겨주었다. 레드 카펫이 깔린 국빈대접을 그것도 미국으로부터 받음으로써 러시아는 국제적 고립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됐다.’ 이어지는 지적이다.
트럼프는 푸틴과 3시간동안 대화를 했다. 그러나 아무 구체적 합의사항 발표가 없었다. 그러니까 휴전합의는커녕 어떤 명목적 양보도 없이 푸틴만 얻을 것을 다 얻어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지의 진단이다.
8월 초까지만 해도 트럼프의 발언은 서슬이 퍼랬었다. 러시아군이 민간인에 대해 무차별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푸틴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그 러시아와 교역을 하는 나라들에 대해 대대적인 2차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실제로 인도에게 고율의 관세를 부과 했다.
그러나 알래스카 정상회담에서는 ‘제재’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여러 면에서 볼 때 트럼프와 푸틴, 둘 모두가 원했던 쇼였다.’ 알래스카 정상회담에 대한 타임지의 촌평이다.
뭐랄까. 각색에, 연출에, 주역까지 트럼프가 도맡은 ‘리얼리티 쇼’라고 할까. 전 지구촌의 눈이 이 쇼에 집중됐다. 이 점에서 트럼프는 행복했다. 그러나 트럼프 보다 더 행복을 만끽한 건 푸틴이다.
러시아 대통령은 항용 전 세계 유일의 수퍼 파워 미국과 정상회담을 가지게 됐을 때 아주 행복해 한다. 그만큼 위상이 올라가니까.
푸틴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전범(war criminal)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그런 그가 여행할 수 있는 나라는 북한, 중국, 이란, 쿠바 등 우중충한 몇 나라로 국한돼 있다. 주요 서방 국 등 100개에 이르는 다른 나라 땅을 밟으면 체포될 수도 있다.
그런 그를 미국 대통령이 미국 땅에 초대해 동격으로 대접해 주었다. 그러니 푸틴으로서는 얼마나 행복 했을까 하는 것이 타임지의 비판이다.
꽤나 요란스럽게 마련된 ‘리얼리티 쇼’였다. 그렇지만 미국은 얻은 것이 없다. 이를 통해 새삼 불거진 진실은 뭔가 거래를 절실히 원한 것은 푸틴 보다는 트럼프였다는 것이 계속되는 지적이다.
거기에다가 ‘트럼프 표 외교이론’의 허점만 드러냈다는 비판도 따른다.
개인적으로 외국 원수와 따뜻한 관계는 상대를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된다. 트럼프의 지론이다. 그게 그런데 순진하다 못해 망상에 가깝다는 거다.
‘국가들은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국익(national interest)만 있을 뿐이다.’ 헨리 키신저가 한 말이다. 트럼프는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연하면 푸틴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러시아 제국 영광 재현이 그것이다. 단지 이 목표 달성을 위해 미소에, 악수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면 그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다.’- 독일 최초의 여자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집권 16년 동안(2005년 11월~2021년 12월) 푸틴 러시아에 대해 유화정책을 추구하면서 내건 신조였다. 그 논리는 결국 허구였음이 2022년 2월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드러났다.
‘푸틴이나 시진핑 같은 독재체제 지도자들은 단지 시간을 벌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 등 민주주의 지도자들과 협상에 나설 뿐이다.’ 알래스카 정상회담과 관련해 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가 던진 지적이다.
그들, 독재체재 지도자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해는 물론, 체제의 이해(interest), 더 나가 이상(ideal)도 민주체제, 특히 미국, 유럽 등 강력한 민주국가들과 크게 상충, 대립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들과 한 두 차례의 협상을 통해 평화적 공생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는 믿음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거다.
푸틴의 제국 러시아의 영광 재현의 꿈은 수 십 년 집권 세월을 거치면서 통치 이데올로기가 됐다. 동시에 푸틴의 서방, 특히 미국에 대한 분노와 원한은 심원하다 할 정도로 깊어졌다. 미국과 서방을 침략자로만 보는 것이다.
그 꿈의 실현은 과거 소련제국이 거느렸던 영토를 되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란 나라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는 단지 흡수 대상일 뿐이다.
타임지의 지적으로 이는 다른 말이 아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거다. 전황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현 상황에서. 그리고 어찌 보면 전쟁을 통해서만 체제유지가 가능한 러시아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더 더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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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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