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공무역으로 산업화 기반 구축…공급망 재편 속 협력관계 복원
▶ GNI 일본 추월했지만 저출산·부채 그림자… ‘日 반면교사 삼아야’ 제언도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 이후 양국은 갈등과 긴장 속에서도 경제적으로 깊은 상호 의존 관계를 이어왔다.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과 엔 차관은 한국의 산업화 초기 결정적인 자금줄이었고, 일본에서 수입한 자본재와 중간재는 한국 제조업 기반 형성의 핵심 동력이 됐다.
일본이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졌던 동안, 한국 경제는 고속 성장을 이어가며 격차를 좁혀갔다.
지난해에는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일본을 앞지르는 '소득 역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 정치 문제로 경색됐던 한일 경제 교류…정상회담 계기 복원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유무상으로 받은 자금과 기술·자본재를 바탕으로 산업화 기반을 구축하고, 가공무역형 경제 구조를 형성했다.
1980년대까지는 협력 중심의 관계였지만, 2000년대 이후엔 협력과 경쟁이 공존하는 구조로 전환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양국 간 정치적 갈등이 경제협력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특히 2019년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을 문제 삼아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에 수출 규제를 단행해 큰 파장이 일었다. 이는 한국이 국산화와 공급망 다변화에 대응하면서 탈일본 전략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양국 간 불신이 깊어진 가운데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하고 한국은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며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최근엔 한일 경제협력이 점진적인 복원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양국은 2023년 정상회담을 계기로 외교관계를 되돌리고 경제 분야 협력도 본격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 재지정하면서 수출 규제도 사실상 해제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8년 만에 100억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등 금융부문에서도 신뢰가 강화됐다.
12월에는 포괄적 경제 분야 대화체인 고위경제협의회도 재가동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외부 환경 속에서 한일 양국이 '경제안보 파트너'로서의 실익을 다시 점검하게 된 결과다.
◇ '추격자'였던 韓, 소득 역전 성과…"일본 사례서 교훈 얻어야" 제언도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1991∼2000년 연평균 성장률은 1%대 초반에 그쳤고 이후 2010년대까지도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기간 한국은 수출 중심의 산업화와 정보통신 기술 확산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외부 충격 속에서도 2000년대 들어 연평균 4%가량의 실질 GDP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일본과 격차를 좁혔다.
결국 양국 간 '소득 역전'이 나타났다.
1990년대 일본의 1인당 GNI는 3∼4만 달러였고 한국은 1만달러 안팎으로 3분의 1 수준이었다.
지난해엔 한국의 1인당 GNI가 3만6천624달러를 기록하면서 일본(3만4천500달러)을 넘어섰다.
명목 GDP는 여전히 일본이 더 높은 수준이지만, 양국 간 격차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
일본 경제의 '추격자'로 여겨지던 한국이 이제는 대등한 위치로 올라선 것이다.
이런 추세가 향후에도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한국도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장기 저성장'의 초입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일본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표적으로 민간 부채 비율은 2023년 기준 GDP 대비 207.4%로, 일본 버블기 최고치(214.2%)에 근접했다. 과도한 자산시장 연계 대출은 자원배분 왜곡과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구 구조 역시 닮은꼴이다. 일본은 급속한 고령화와 출산율 하락으로 성장잠재력이 떨어졌고, 한국도 생산연령인구 2017년, 총인구 2020년을 정점으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력 유입, 서비스산업 고부가가치화, 교육·기술 인력 재편 등 구조개혁의 긴급성이 커지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 등 인구 구조의 변화는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정부부채 비율은 2023년 GDP 대비 24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50.7%로 낮은 편이지만,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사회보장 지출 확대와 세수 감소 추세를 고려하면 중장기적 압박이 불가피하다. 엔화와 달리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할 점이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한 국가의 흥망성쇠는 운명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며 "일본의 과거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노후화한 경제 구조를 혁신·창조적 파괴해야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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