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62) 한복

한복메이커 목운단 한복의 김영희(72) 대표가 한복 저고리의 마지막 손질인 동정을 붙여 완성하고 있다. [Photo ⓒ Hyungwon Kang]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시대 여성들이 소례복(小禮服)으로 착용하던 옆선이 깊게 트인 긴 당의(唐衣) 저고리에는 오래 살고 복을 누리는 수복(壽福)이 새겨져 있다. [Photo ⓒ Hyungwon Kang]

석주선기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전통혼례복에는 오방색이 포함되어 있다. [Photo ⓒ Hyungwon Kang]

은퇴교사 서미라 선생이 따님 결혼식에 전통 한복을 입고 도착하고 있다. 한복은 나이와 관계없이 멋을 낼 수 있는 의상이다. [Photo ⓒ Hyungwon Kang]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60~80년대 한복 디자인의 독보적인 이리자(1935~2020) 한복 디자이너의 1977년 미스코리아 진 김성희 한복의상 작품. [Photo ⓒ Hyungwon Kang]

한복의 전통 중 저고리의 왼쪽 여밈이 항상 오른쪽 위로 덮여지는 기본 디자인이 반영되어 있는 당의(唐衣) 저고리.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석주선 기념박물관 소장품. [Photo ⓒ Hyungwon Kang]

경기도 오산에서 발견된 무덤 속에서 나온 16세기 조선여성의 한복 치마는 현대 패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디자인이다. [Photo ⓒ Hyungwon Kang]
“의복이 날개”라는 말이 한국말에 있다면, 미국에서는 “보이는 것이 현실(Perception is Reality)”라는 말이 있다.
한복은 우리 민족과 문화의 첫인상을 주는 의상으로 시대를 거치며 우리들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의복으로 발전해왔다. 우리의 고대문명과 함께 발전해온 대표적인 우리 한복의 특징은, 무엇보다 입고 있는 사람이 편안하고, 편리하며, 옷의 기능 또한 다양하고 아름답다. 수천년간 이어온 한복의 전통 중에는 저고리의 왼쪽 여밈이 항상 오른쪽 위로 덮여지는 기본 디자인이 있다.
여름에는 옷을 다 벗지 않고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날씨와 관계없이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한복은 시대와 신분, 상황에 따라 색상과 디자인, 재질, 그리고 기능 등이 다양했다.
한복의 속옷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무명, 삼베, 모시 등을 이용해 홑겹으로 만드는 여름용 속옷은 고쟁이이고, 속바지는 추울 때 입을 수 있도록 솜을 누비거나 겹으로 만든다.
여러 겹의 치마를 입고 있으면서도 고쟁이를 입었을 때는 화장실 갈 때 옷을 벗지 않아도 쭈그리고 앉으면 아래가 열리는 위생적이며 편리하고 우수한 디자인으로 우리 조상들의 명석함이 보인다. 국악원 의상에는 고쟁이가 포함되어 있지만, 일반인들의 속옷 선호의 변화로 요즘은 고쟁이 대신 속바지를 입는다.
어려서 11살에 처음으로 옷을 만들어 입어본 후 43년 바느질 일을 해온 한복메이커 ‘목운단 한복’의 김영희(72) 대표는 1912년생 어머니께서 평생 고쟁이, 속치마, 치마 순서로 입으셨다고 한다. 한복을 작업복으로 입던 기생한복을 80년대에 많이 만들 때는 유행을 민감하게 타며 저고리 기장이 짧고 길게 자주 변했고, 소매 끝동도 개인 취향에 따라 넓이와 색이 다양했었다고 한다.
고려원, 대하, 명월관 등 고급 한정식집이 10여 년 전에 없어지면서 기생한복 주문은 없어졌지만, 요즈음은 국악인들의 한복 의상을 주로 만드는데, 무대의상 한복은 예전처럼 허리끈을 매지 않아도 멜빵(조절끈)과 찍찍이(Velcro)를 붙여서 입기 편한 치마를 만들며, 페티코트 속치마가 치마를 풍성하게 만든다.
평상복 한복 치마는 전통 섬유의 대표적인 (12.5인치 넓이) 한산 모시 8폭 이나 9폭으로 만드는데, 무대용 연주복은 11폭을 쓴다. 한국 여성의 한복 저고리 가슴둘레 표준은 88cm인데, 덩치가 큰 사람의 한복 저고리는 125cm까지도 만들어봤다고 한다.
“고대 사서에 한국인은 옷이 깨끗하고 비단옷을 입으며 흰옷을 숭상한 것으로 나옵니다. 고구려 벽화나 6세기 중국 남조 양나라에 방문한 고구려 백제 신라 사신을 기록한 양직공도(梁職貢圖)를 보면 다른 많은 나라들에 비해 유독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당나라의 화려한 왕실 의상은 당 왕조의 지배층인 예맥(선비)족의 의상이며 여성들의 풍만한 몸과 흰 피부는 중국 남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과 가까운 북방 예맥(선비족)인의 외모입니다”라고 ‘동북공정 이전 중국이 쓴 한국사’의 저자 이기훈 선생은 말한다.
고려시대에 세계를 지배한 원나라에서는 고려양으로 불렸던 세련된 고려 의상이 유행했으며, 현재 한국풍 의상이 중국 의상 트렌드를 이끄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코로나 이전 한국의 동대문 의류시장은 보따리상을 비롯해 중국의 온라인 홍보상들이 넘쳐났고 중국 소셜미디어를 보면 여전히 한국 젊은이들 의상에 관심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라고 북경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이기훈 선생은 말한다.
한복의 다양성은 일반인의 평상복보다 왕실을 비롯한 사회지배층의 의상에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가진 한복에서는 색깔로 상징하는 바가 많다.
조선시대(1392-1910)에는 임금님과 왕비의 의상이 모든 의상의 최고 표현으로 여겨졌으며, 궁중의상실 상의원(尙衣院)에서는 조선시대 임금의 의복은 물론 궁 안의 모든 사람들의 의상을 책임졌다. 일반 백성도 혼인날에는 임금님과 왕비의 의상을 모방한 한복을 입었다.
우리 문명만큼이나 오랜 민속신앙 전통에서는 색깔을 중요시한다. 평상복이 대부분 흰색이었다면, 청·적·황·백·흑의 다섯 가지 오방색상의 의상은 백일, 돌, 혼인, 회갑 등 잔칫날에 색깔을 맞추어서 옷을 입었다. 신분의 높낮이를 오방색 옷으로 정의했고, 추가로 오방색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색인 오간색(五間色)이 있다.
오간색은, 서방金과 동방木 사이에는 벽색碧色, 동방木과 중앙土 사이에는 녹색綠色, 남방火과 서방金 사이에는 홍색紅色, 남방火과 북방水 사이에는 자색紫色, 북방水과 중앙土 사이에는 유황색硫黃色이 있다.
어린 아기가 태어난 지 21일 되는 삼칠일이나, 태어난 후 100일에는 백설기를 먹고, 여느 중요한 행사에는 백설기를 등장시켰는데, 백색이 신성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혼인날에 신부의 얼굴에 붉은 연지 곤지를 해서 사악한 기운을 막고, 장례식에서 전문적으로 울음을 파는 곡비(哭婢)는 반드시 손톱을 빨갛게 물들였다.
현재는 평상복보다는 결혼식, 명절, 경사, 상례, 제례같이 격식을 차리는 자리나 특별한 날에 주로 한복을 입는다. 또한 서울 고궁에서는 한복을 입은 방문객에게는 무료 입장 혜택이 있다.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우리·문화·역사 Visual History & Culture of Korea 전체 프로젝트 모음은 다음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www.kang.org/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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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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