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켈로부대 출신 김인수 박사의 각별한 나라사랑
▶ 한국전쟁 특집
절친한 한국전 전우인 안소니 마라 씨와 함께 워싱턴 한국전참전기념공원을 찾은 김인수 박사.
적군의 총알이 빗발치는 1950년 겨울 황해도 연안의 상륙작전. 엔진도 없는 어선을 타고 노를 저어 적진에 상륙하는 한국 특수부대원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비장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무기도, 장전할 총알도 충분하지 못했다. 매섭도록 추운 날씨에 배를 채울 보급물자는 저 앞에서 맹렬히 저항하는 적군의 것이 전부. 반드시 적진을 함락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절박한 상황은 꿈 많았던 어린 대원들이 겪기에는 너무나 혹독한 전쟁의 현실이었다. 쓰러지는 전우를 일으켜 세울 틈도 허락지 않는 격렬한 전투 속에서 생사의 공포를 겪다 살아남은 한 젊은이, 이제 노병이 된 김인수 박사(84)에게는 아직도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적진침투·시설파괴·북한군 회유 등 임무
지난해 메릴랜드 정부·의회서 첫 인정
6·25전쟁 당시 군번도 계급도 없이 대북 특수임무를 수행하던 켈로부대(KLO, 주한첩보연락처) 소속 8240부대원이었던 김인수 박사에게 지워지지 않는 전쟁의 기억은 잠을 설치게 할 만큼 참혹한 것들이었다.
전투에서 죽어간 부대원들을 생각하며 67년 전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결심을 잊지 않은 채 지금도 마지막 여생을 전우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바치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김인수 박사.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당시 김인수 박사는 21세 꿈 많은 의학도였다.
“전쟁 직전까지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니고 있었죠. 그러다 1950년 10월 16일, 8240부대에 입대했습니다. 당시 압록강으로 진격 중이던 미 8군에서는 공산당 소탕을 위해 지역사정을 잘 알고 있는 이북 출신자, 특히 영어가 가능한 인원이 필요했지요, 전 다행히 영어가 가능해 차출됐습니다.”
김 박사는 당시 조국을 지키겠다고 나선 여러 향토 방위대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공산당의 만행으로 가족을 잃고 증오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포로가 된 적군을 죽이는 일은 없었어요, 오로지 피난민들, 불쌍한 주민들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미군을 도왔습니다. 이들이 결국 켈로 부대원들이 돼 미군을 도와 특수임무를 담당하게 됐죠”
김 박사가 활동하던 8240부대는 적진침투, 주요시설 및 교량파괴를 비롯해 북한군의 회유, 탈영을 유도하는 등의 공적을 세웠다.
“당시 미 8군은 미국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wolfpack operation’ 등 비공식 작전들을 펼쳤는데 그 중심 선상에 20여개의 켈로부대가 활동했었고 정전이후 1급기밀로 처리되면서 이들의 공적이 잊혀졌습니다.”
김 박사는 특수임무활동 중 적의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거나 부상으로 신체가 절단된 젊은 병사들을 수없이 목격했다.
“의학을 전공했으니 의무대에서 근무할 때가 많았습니다. 적군이든 아군이든 실려 오는대로 치료하느라 정신없었죠. 수많은 전우들의 죽음을 보았고 중공군의 가세로 아군이 철수할 때는 산악지에서 얼어 죽는 군인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김 박사는 전쟁이 끝난 1954년 4월 제대해 의학공부를 계속했고 1965년 보스턴 이민 후 1975년 암 연구센터의 초청으로 워싱턴에 정착하게 됐다.
“전우들의 명예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조국과 평화, 자유를 위해 죽어간 참전용사들이 너무 불쌍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 반드시 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것이 지난 2013년 3월 발족한 한미 공수특전단 전우회(Korean American Airborne and Partisan Chapter)였다.
당시 한국과 미군 참전용사들이 모두 포함된 이 단체는 초기 창단 멤버가 20여명 정도로 초대회장은 더글러스 딜러드 예비역 대령이 맡았고 김 박사는 부회장을 맡아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왔다.
그러던 지난 2016년 2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메릴랜드주 정부와 의회가 켈로부대의 공적을 인정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지 못하고 죽은 전우들에게 미안했습니다. 한국 군인으로서 미국에서 인정받고 영웅 대접을 받으니 고맙기도 하고 더 많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박사에 따르면 현재 캘리포니아, 네바다, 네브라스카, 조지아 주가 캘로부대 공적인정을 위한 작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내 놓으며 지켜 일구어낸 조국 대한민국은 반드시 하나가 돼야합니다. 조국이 정치와 이념문제로 갈등과 분열을 겪는데서 벗어나 국민들부터 하나가돼 다시는 총성 없는 통일을 보는 것이 저의 큰 바람이지요.”
김 박사는 한국에서 정치적인 문제로 전쟁과 배고픔을 겪은 세대와 풍요 속에 또 다른 경제적 생존으로 고전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이념갈등으로 맞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럴 때 마다 그는 죽은 전우의 철모에 희미하게 그려져 있던 태극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현재 우리 대한미국의 미래를 있게 했다고 굳게 믿는다.
“나는 전쟁을 통해 지금 이 나이까지도 희생과 사랑 없이는 조국의 값진 미래를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배우고 있습니다. 생존해 있는 참전 용사들과 순국선열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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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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