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렉시트’ 앞둔 영국 서민들‘ 앞날 불안’
▶ 물가 감안 소득 10년 전보다 하락
런던 북동부에 사는 건축노동자 에디 스탬턴(51)은 매년 이때쯤이면 여름휴가 준비에 나섰다. 지중해 해변으로 날아가 휴가를 즐길 준비였다. 그런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결정이 내려진 후 영국의 파운드화 가치는 유로화 대비 13% 하락했다. 그 결과 영국인들이 즐기는 유럽대륙 휴가 비용이 올라갔다. 대륙에서 수입해오는 육류 치즈 와인 등 식품가격도 올랐다. 개솔린 가격 역시 뛰었다.

- 런던의 지하철 공사장 근로자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현재 영국의 평균 주급은 10년 전 주급에 비해 오히려 낮아졌다.
지난 8일 총선에서 나타난 테리사 메이 총리와 보수당의 참패 그리고 노동당의 예상치 못한 선전은 가속화하는 인플레이션과 무관하지 않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 데 임금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소비자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경제가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스탬턴은 본래 보수당을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U.K. 독립당을 지지했다. 오래 전부터 영국의 유럽 탈퇴를 주장해온 군소정당이다. 그런 정치적 입장이 몰고온 결과는 파운드 하락. 그는 햇살 눈부신 그리스 해변 휴가 대신 사우스 런던의 그늘진 공원 휴가를 택했다. 해외 여행비용이 너무 비싸서 국내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브렉시트라는 대변화를 앞두고 경제적 파장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브렉시트 협상을 시작하기 앞서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조기 총선을 실시한 메이 총리와 보수당은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하는 충격적 결과를 맞았다.
보수당이 계속 통치 의지를 보이는 가운데, 경제적 위축은 영국 보통사람들의 불만을 한층 강화시킬 조짐이다. 근년 경제 성장기에도 일반서민들은 그 과실을 전혀 얻지 못했었다.
올 1.4분기 경제는 이전 분기에 비해 고작 0.2% 상승했다. 2016년 연말의 0.7% 성장세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당시는 연 성장률 2%의 페이스로 경제가 성장했었다.
소비자 지출은 영국 경제활동의 거의 2/3를 차지한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경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말이다. 그 파장이 정치에 까지 미칠 것은 물론이다. 영국의 근로자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임금은 10년째 제자리걸음인데 생필품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이 경기후퇴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은 없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은 연 1.5%에서 1.75%로 저조하리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경제적 엘리트에 대한 수백만 근로계층의 반발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근로계층은 임금하락으로 갈수록 살기가 어려운 데, 전 세계를 누비는 자본가들은 런던을 부의 카니발 장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유럽연합(EU) 공식 탈퇴 협상에 앞서 리더십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이 의석을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브렉시트를 이끌어낸 같은 유권자들이 이를 실행할 정부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경제적 몫에 대한 불만이다.

잉글랜드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블랙풀 놀이공원. 파운드화 약세로 물가가 비싸지면서 많은 영국인들이 지중해 해안에서의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국내 여행을 택하고 있다
바이다스 젤스키스라는 목수는 리투아니아 태생으로 12년 전 영국에 이주했다. 그동안 그가 받는 임금은 하루 120파운드(당시 환율로 224달러)에서 180파운드(233달러)로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그가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식품과 생필품 가격은 매주 50파운드였던 데서 지금 120파운드로 뛰어 올랐다.
탬스강 남쪽의 초고층 빌딩인 샤드에서 일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그는 말했다.
“부자들은 언제든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지요. 하지만 중산층은 정말이지 (경제적 어려움을) 느낍니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대부분 근로계층은 2008년 재정위기로 인한 깊은 상처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를 못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영국의 평균 주급은 10년 전에 비해 낮아졌다고 런던,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경제전문가 마틴 벡은 말한다. 지난 4월 영국의 실업률이 4.6%로 떨어진 것과는 별개로, 이런 낮은 임금 수준은 1975년 이래 없던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에게 진짜 경기 회복은 수년째 없었던 것이지요.”
과거에는 낮은 실업률이 임금 상승을 유도했다. 일할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어 고용주들이 채용 경쟁을 벌이다 보니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왜 이런 역동성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지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있다.
몇가지 요인은 있다. 우선 과거에 비해 노조가 힘을 잃었다. 풀타임 보다 파트타임이나 임시직 채용이 대세로 바뀌는 경제구조에서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할 목소리가 약해졌다.
파운드가 하락하면서 영국의 수출은 활기를 띄고 있다. 가격 대비 경쟁력이 유럽이나 미국 경쟁사들에 비해 우세하기 때문이다. 영국산 위스키, 연어 그리고 초컬릿은 엄청나게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식품 수출보다 수입이 많다. 자동차, 비행기, 의료기기 등 영국의 핵심 수출산업들은 부품을 유럽 제조업체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이다. 파운드 약세러 완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한편 제조 경비는 오히려 올라가고 있다.
브렉시트는 국제 금융센터로서 런던의 지위를 흔들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고소득 금융계 일자리들이 상당수 사라진다. 런던 금융가에서 하는 일의 1/3 정도는 유럽 고객들의 금융거래를 처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고 나면 이들 업무의 대부분은 불법이 될 수가 있다.
글로벌 은행들은 이미 런던에서 하던 업무를 유럽연합 내 다른 도시로 옮길 계획들을 구상하고 있다. 영국은 앞으로 2년 동안 관련 일자리 1만5,000~1만8,000개를 잃을 수가 있다.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 역시 줄어들 전망이다. 브렉시트로 영국이 유럽대륙 시장으로부터 분리되면 영국을 유럽의 허브로 삼을 동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은 일반 소비자들이 맞고 있는 재정적 곤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4월 영국 소비자들의 크레딧카드 빚은 1년 전에 비해 거의 10%가 늘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늘어난 것은 지난 10여년 사이 처음이다.
실제 소득에 비해 빠르게 높아지는 생계비용을 맞추려다 보니 빚이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으로 봉급은 사실상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재원은 곧 바닥 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각 가정들은 긴축재정에 들어가고, 그로 인해 제일 먼저 희생되는 것이 여름휴가이다. 런던 북서부, 엠블리에 사는 5자녀의 엄마 제니퍼 코빈(48) 가족도 매년 캐너리 아일랜드로 가던 여름휴가를 포기했다. 식품비, 주거비, 여행비 모두가 너무 비싸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코빈 가족은 올해 영국 남부에 있는 브라이튼 비치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는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