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력적 극단주의자들의 온상 취급... 연방차원 테러방지 프로그램 시행
▶ 피부색만 다를뿐 온전한 미국인인데… “명백한 사찰에 종교·인권 침해” 격앙
무슬림, 기독교, 소수계와 정부의 지도자들이 보스턴 록스베리 커뮤니티 칼리지에 모여 CVE에 관한 비디오를 시청하고 있다.
■ 잠재적 위험세력 취급 ‘억울’
사미어 무히후딘(38)은 최근 남가주의 한 무슬림 종교단체가 주최한 커뮤니티 토론회에서 패널리스트들이 쏟아놓는 열띤 발언을 들으며 혼란의 늪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토론회는 폭력적 극단주의 예방을 위한 연방 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이니셔티브에 관한 것이었다.
테크놀러지 회사의 부사장인 무히후딘(38)은 미국 시민이다. 아내는 오렌지카운티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세명의 딸도 물론 미국 태생이다. 그는 자신이 미국 시민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없다. 태생적으로 그의 몸에는 아랍인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그의 뇌는 이미 ‘미국화’한지 오래다.
무히후딘은 토론회 내내 자신과 그의 가족이 이런 식의 대화에 참여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 커뮤니티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직조물의 한 부분이다.
날줄과 씨줄이 촘촘히 짜여진 피륙에서 어느 한 부분을 도려내면 결국 천 전체가 해체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개인과 집단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유기적 결합을 통해 세워진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는다.
무히후딘은 주류 토박이들과 생김새가 다른 딸들에게 “너희도 그들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려주었다.
분명한 미국인이면서도 단지 인종적, 종교적 배경이 다르다는 사실로 인해 자칫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들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최 측의 초청으로 참석한 토론회에서 그는 자신과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 현저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슬림 아메리칸’인 무히후딘은 자신을 틀림없는 미국인으로 간주하지만 정부 당국 눈에는 완전한 무슬림으로 비쳐지는 듯 했다.
토론회의 주제는 테러방지였다. 테러를 막기위해 커뮤니티가 발 벗고 나서자는데 토를 달 이유가 없다. 테러방지는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필요성과 가치를 인정하는 범국민적 목표다. 하지만 토론회에서 소개된 연방 정부 차원의 CVE(폭력적 극단주의 방지책)는 무슬림 커뮤니티를 염두에 두고 특별히 고안한 일종의 ‘보안 취약점 강화’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무히후딘을 열 받게 만들었다.
남가주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무슬림들은 지난 가을 오바마 행정부가 커뮤니티의 참여를 골자로 하는 CVE 구상을 발표했을 때부터 혼란을 느꼈다.
연방 정부는 CVE를 테러방지 ‘특효약’으로 처방했다. CVE를 통해 커뮤니티 내부에서 폭력집단 동조자들의 급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막음으로써 테러리즘을 차단하고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무슬림 전사 모병활동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극단적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 (IS) 국내 추종자들의 무슬림 청소년 포섭공작을 저지하기 위해 커뮤니티 전체가 사법당국과의 긴밀한 공조 하에 잠재적 불순세력의 급진화를 막아내자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골자였다.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CVE가 LA와 보스턴, 미니애폴리스 등지에서 시험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따지고 보면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은 정부의 발표가 나오기 수년 전부터 이미 각 지역의 경찰이 수행하던 임무였다. 그러나 여기에 연방정부의 도장이 찍히자 테러방지라는 허울아래 미국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 아메리칸 무슬림들을 상대로 공식적으로 프로파일링을 시행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냐는 의심이 끼어들었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CVE가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민권과 종교적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점을 특히 우려했다.
사실 무히후딘처럼 CVE에 열을 받는 무슬림이 많은 것도 무리는 아니다. CVE는 무슬림커뮤니티가 폭력적 극단주의자들의 잠재적 온상이라는 묵시적 가정 아래 출발한다는 일부의 주장을 ‘헛소리’로 일축하기 힘들다.
무슬림 지도자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지지론을 펼치는 쪽은 커뮤니티 내부에 꿈틀대는 극단주의 세력에 맞서기 위해 당연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 같은 아웃리치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커뮤니티의 집단적 아이디어를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무슬림 커뮤니티를 겨낭한 ‘베일에 가려진 사찰’이라고 맞받는다.
회의론자들은 2011년 AP통신이 폭로한 뉴욕경찰국의 무슬림 동태 감시와2000년대 회교사원에 침투했던 FBI 끄나풀의 양심선언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남가주의 회교 사원에 교인으로 위장 침입했던 FBI 프락치는 “회교교회에 등록해 교인들의 환심을 산 후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녹취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훈련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열렸던 테러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IS가 무슬림 커뮤니티의 대변자라는 잘못된 인식에 맞서야 한다”고 선언했다.
실무담당자들은 문제의 정상회담이 무슬림 전체를 겨냥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실제로 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내용은 커뮤니티 내부의 IS 지지자들이 청소년들을 그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어떻게 차단하느냐로 모아졌다.
미국 정보기관에 따르면 전 세계 회교 커뮤니티로 파고든 IS 지지 세력의 이슬람 전사모집 캠페인은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대박’을 터뜨렸다.
IS가 위세를 떨치고 있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제까지 전투에 참가한 해외 전사들은 2만여명이고 이 가운데 최소한 3,400명이 서방국 출신이다. IS에 가담하기 위해 시리아나 터키로 향한 미국적자의 수는 약 150여명으로 추정되지만 이들 모두가 계획했던 대로 IS의 품에 안긴 것은 아니다. 일부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미 당국의 추적에 걸려 U턴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 사법당국과 정보기관들은 20년 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 청사에 차량폭탄 테러를 가해 168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티머시 맥베이와 같은 자생적 극단주의자들을 색출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보안당국은 온 역량을 IS 동조세력 차단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연방 정부는 CVE에 대한 저항을 줄이기 위해 여러 형태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위장막을 쳤다. 무히후딘이 참석했던 미션비에호의 타운홀 모임이라든지, 학술회의, 멘토십 프로그램, 온라인 비디오와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에 이르기까지 가급적 의심스런 ‘냄새’를 피우지않는 ‘메뉴’를 개발했다.
그러나 아무리 겉모습을 꾸민다 해도 무슬림 커뮤니티의 의구심과 의심을 지워낼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CVE는 커뮤니티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연방 검찰, 국토안보국, 연방 수사국(FBI), 경찰 등 지역 법집행기관이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고 그 아래에 지역 종교단체와 커뮤니티 단체들이 자리 잡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CVE는 분명 필요한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무슬림커뮤니티의 입장에서 볼 때 구조 자체가 의심스런 조합인 것 또한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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