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스튜디오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나날이 발전해왔다. 액션의 시각 효과를 최고의 기술력으로 구현함과 동시에 ‘개별 캐릭터, 개별 시리즈’ 자체의 각본, 각 시리즈를 맞물리게 해 한 곳으로 응축하는 전개가 돋보였다. 요컨대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는 액션을 보는 재미와 스토리를 읽어가는 재미 모두를 만족시켰다. ‘아이언맨2’(2010)로 삐끗했던 ‘아이언맨’ 시리즈가 ‘아이언맨3’(2013)로 명예회복에 성공하고, ‘캡틴 아메리카:퍼스트 어벤져’(2011)에서는 어설프기만 했던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2014)에서 극적인 진화를 보여준 건 마블류 영화가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가 이렇게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벤져스’(2012)의 성공이 있었다.
단순 이벤트성 기획으로 보였던 이 영화는 각 캐릭터의 전사(前史)와 현재의 이야기를 탄력있게 이어 붙인 각본, 강력한 액션에 발군의 유머 감각이 더해져 완성도 높은 ‘특급오락영화’로 탄생했다. 아마도 ‘어벤져스’는 마블스튜디오가 2019년까지 히어로 무비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게 한 기점이 됐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대한 영화 팬의 기대감이 증폭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마블의 영웅들이 이번에도 전에 느낀 적 없는 영화적 쾌감(오락적인 면에서)을 선사할 것이라는 바람 때문이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21일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 첫 공개됐다. 거칠게 비교하자면,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이 최근 내놓은 ‘아이언맨3’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성취에 미치지 못한 영화였다. 더 단도직입적으로는 전작인 ‘어벤져스’보다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데 이견은 없지만 액션은 평범하고, 각본은 허술했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 코믹스 마니아도, 꾸준히 이 시리즈를 봐온 영화 팬 누구도 온전히 만족시키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승승장구하던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영화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한발짝 퇴보했다. 그리고 이 퇴보는 앞으로 나올 마블 영화의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것이다.
빼앗긴 로키의 창을 되찾은 어벤져스,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는 이 창에 담긴 우주 물질을 연구하던 중 이를 활용하면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스타크와 배너는 다른 어벤져스 모르게 인공지능 아이언맨이라 할 수 있는 울트론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다. 실패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던 이 프로젝트는 스타크와 배너도 알지 못한 채 자가발전하고, 울트론이 탄생한다. 그런데 지구를 지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울트론(제임스 스패이더)이 지구의 모든 인간을 멸종시키려 한다. 어벤져스는 울트론을 제거하기 위해 나선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구도는 ‘어벤져스’와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 ‘어벤져스’가 아이언맨 등 영웅들이 ‘모이고, 싸우는’ 이야기였다면,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이들이 ‘(적에 맞서)싸우고, 헤어지는’ 모습을 담는다. 17일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조스 웨던 감독이 “각 캐릭터를 심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 ‘이별’에 있다. 사실 울트론에 맞서 지구를 구한다는 건 부수적인 스토리로 보인다. 이 작품이 더 집중적으로 다루는 건 이들이 각자의 입장 차이 혹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더 나아가서는 이데올로기의 차이를 확인하고 어떻게 결별하는지를 그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명확하게 대립선을 구축하는 인물들이 있는가 하면 개인적인 이유(인물의 과거와도 관련이 있다)로 어벤져스로 남을 수 없는 인물도 있다. 울트론이라는 적은 이들의 이별을 촉발하는 매개체다.
시종일관 경쾌하고, 유머로 넘쳤던 전작과 다르게 후속작은 이별을 다룬다는 점에서 더 진중하고, 상대적으로 우울하다. 전작의 분위기를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적지 않게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분위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평가절하 하는 건 부당하다. 이별이 만남보다 때로는 더 복합적인 감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전작보다 만들기 어려운 영화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전작보다 더 품격있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울트론과 맞선다는 큰 틀 안에서 ‘영웅들의 갈등과 이별’이라는 깊은 감정까지 담아내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혹자는 그것이 액션영화 혹은 오락영화의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마블의 영화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감정들을 사려 깊게 담아내는 능력 때문이었다고.
기존의 어벤져스 6명은 복잡한 과거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토니 스타크는 뉴욕 전투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고,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번스)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릿 조핸슨)는 암살자로 길러진 과거를 두려워 하고, 브루스 배너는 도망자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토르(크리스 햄스워스)는 신으로서의 역할에, 클린트 바튼(제러미 레너)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능력에 자격지심이 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이 모든 것을 다루려 한다. 이 후속작은 각각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의 영화에 압축하고, 또다른 이야기인 울트론과의 대결에도 러닝타임을 할애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조스 웨던이 ‘어벤져스’ 차기작 연출을 맡지 않겠다고 한 건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어느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모든 걸 담으려 했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 것도 담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는 설명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너무도 많다.
조스 웨던 감독은 결국 대마를 놓친다. 바로 이들이 왜 반드시 헤어져야만 하는지를 관객에게 설득하지 못 하는 것이다(이는 향후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보여질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대립의 전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각 영웅이 가진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명확히 들어오지 않는다. 마블 시리즈를 모두 보지 않았다면, 이들의 대화를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이들의 마지막 선택도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여기에 울트론과 비전의 탄생 과정, 울트론이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이유, 울트론이 만든 ‘코어’라는 것의 정체 등 한 번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지다보니 관객은 도무지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다. 이 영화가 중간중간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오락영화로서의 매력도 상대적으로 약해졌는데, 약해진 오락성이 영웅의 이면과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이라는 심도 있는 주제로 이어지지도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역대 최강의 적인 울트론은 그리 위협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는 단점도 드러난다. 어벤져스가 힘을 합하면 언제든지 물리칠 수 있는데, 그들 각자의 고뇌로 인해 울트론의 제거를 잠시 제쳐둔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또 한편으로는 울트론이 말하는 자유가 어째서 인간의 멸종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설득이 되지 않아 악당으로서의 섬뜩함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액션도 기대에 못 미친다. 이미 관객들은 각 캐릭터 시리즈에서 영웅 한 명의 활극은 충분히 봐왔다. ‘어벤져스’ 액션의 핵심은 이 영웅들이 펼치는 협공이다. 첫 번째 시퀀스와 클라이맥스 시퀀스의 단체 액션은 잠시 동안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시각적 체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헐크버스터가 등장하는 것 외의 다른 장면들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어벤져스’의 액션에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퀵실버와 스칼릿 위치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영화 ‘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잠깐 등장시킨 퀵실버로 얼마나 멋진 장면을 만들어냈는지 떠올린다면 ‘어벤져스’ 속편은 너무 안일한 액션을 만들고 말았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 스튜디오의 미래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점점 복잡해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이야기를 어떻게 각색해 나갈 것인가?’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모두 다루려고 하면 부분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2016), ‘어벤져스:인피니티 워-파트1’(2018), ‘어벤져스:인피니티 워-파트2’(2019)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점점 밀도가 높아질 것이다. 여기에 스파이더맨 등 더 다양한 캐릭터가 추가될 예정이기도 하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마블 히어로 무비의 변곡점이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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