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촌에 공급되는 헤로인·몰핀 85%나 생산... 자녀에 아편 먹여 재우고 부모는 종일 중노동
▶ 음식보다 널린 게 마약… 수렁 탈출의 빛 안 보여
아프간 북부 마자르-아-샤리프에 거주하는 누라가 칸이 자신의 집에서 아편을 피우고 있다. 어린 자녀들을 비롯한 칸의 일가족 전원은 아편 중독자다.
[전체 인구의 5%가 중독자]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에 위치한 마약중독자 전문 치료시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병원 앞쪽 잔디밭에 얼굴이 누렇게 뜬 남녀노소 환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병원 안쪽 대기실은 연푸른색 부르카를 착용한 여인네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그들의 옆에는 3~4명의 자녀가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다. 한 눈에 보아도 아이들의 상태 역시 정상이 아니다.
아나 걸(35)은 아편중독 8년차인 아낙네다. 두통과 전신통증을 치료하려 아편에 손을 댔다가 그만 중독이 되고 말았다. 끊어 보려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나는 “이제 다른 약은 더 이상 듣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녀의 세 살된 딸도 아편중독자다. 임신했을 때 계속 아편을 피운 것이 화근이었다.
세계 최대의 헤로인 공급원인 아프가니스탄에는 아나와 같은 중독자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아프간에 파병됐던 미군들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지난 10여년간 총 7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으며 아프가니스탄의 아편생산을 저지하는데 주력해 왔다.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하는 농가들을 자금지원을 통해 밀과 같은 합법적 작물을 경작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미국 정부의 핵심 전략이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지난해 나온 미 국방부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을 비롯한 반정부 무장세력들은 그들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편생산과 판매에 박차를 가했고, 그 결과 양귀비 경작지와 아편 공급량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미군 철수에 맞춰 미국 정부가 제공해 온 공중 화력지원이 사라지면서 아편 경작지를 쓸어버리기 위한 소탕전도 급속히 동력을 상실했다.
최근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추산한 아프간의 마약 수출규모는 연 40억달러 정도. 이 중 4분의 1인 10억달러가 농가 수입으로 떨어지고, 나머지는 지역 관리, 무장 세력, 군벌 지도자와 매매업자들의 손으로 흘러 들어간다.
UNODC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경작지 총면적은 55만3,000에이커로 전년 대비 7% 확대됐다. 이곳에서 재배된 양귀비는 연 380톤 규모의 헤로인과 몰핀으로 만들어져 지구촌 곳곳으로 공급된다. 전 세계 헤로인과 몰핀 공급량의 85%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다.
양귀비 재배로 인해 아프간인들이 지불하는 대가 역시 만만치가 않다. 지난 2009년 이래 아프간 아편 중독자는 60%가 급증한 160만명을 기록했다. 전체 인구의 5%가 중독자라는 얘기다. ‘미 특별감사관실’이 집계한 수치다.
상당수의 아프간인은 아편을 마약이 아닌 만병통치약으로 간주한다. 대단위 양귀비 산지인 아프간 북부 오지에서 약품은 구입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진통효과라는 측면에서도 아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아프가니스탄 북부 지역의 유엔 마약프로그램을 감독하는 루트 라 만은 “현지 약사들이 즐겨 판매하는 대표적 진통제 파나돌은 대부분 유효기간이 지난 것들이고 진통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며 “한두 번 합법적 진통제를 써본 환자들은 약속이나 한듯 아편으로 옮겨 간다”고 말했다.
얼마 전 아프간 북부에 위치한 마약중독 치료시설을 찾은 아이샤 얀은 아이의 암을 치료하다가 가족 전체가 중독의 늪에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어린 딸이 암에 걸리자 아이샤는 치료제 대신 아편을 주었다. 그녀는 “아편이 암을 없애줄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다. 아이샤의 딸은 아편 투입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숨졌다. 이 같은 사실로 미뤄보아 중증 중독자인 아이샤는 딸이 암 확진 판정을 받기 훨씬 이전에 이미 아편에 맛을 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샤는 재활시설에서 가급적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아편의 유혹에 무너질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아프간 발크 지역의 공중보건 코디네이터인 모함메드 다우어드는 아편 중독을 저지하는 최상의 방책은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카불 중앙정부는 아프간 전역에 95곳의 중독 치료센터와 장기 입원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아프간 정부도 이제는 단속과 치료 대신 아편의 해악에 관한 지식을 알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양귀비 산지인 아프간 북부 지역이 마약중독자들의 밀집지인 것은 당연할 일이다. 이곳에서 아편은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품으로 통한다.
북부 지역에 기반을 둔 양탄자 직조업체의 근로자들이 허리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너나없이 아편에 의존한다. 온종일 허리를 구부린 채 일하다 보니 근로자 대다수가 심각한 요통을 앓고 있다.
아편은 아이들을 달래는 데도 곧잘 사용된다. 마약의 해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주민들은 일터에 따라 나오는 아이들에게 상습적으로 아편을 먹인다. 세계 최빈국에 해당하는 아프간의 오지에는 자녀들을 맡길 데이케어센터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근로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대부분이 여성인 양탄자 직조공장 노동자들은 젖먹이를 비롯한 올망졸망한 어린 자식들을 업고, 걸려 일터로 데려온다.
하지만 허리를 펼 틈도 없이 온종일 이어지는 중노동 탓에 이들을 챙길 여력이 없는 엄마는 아편을 수면제로 활용한다.
소량의 아편을 먹이면 어린이들은 곧바로 잠에 떨어진다. 아편에 취한 아기는 웬만해선 엄마의 일이 끝날 때까지 깨어나지 않는다. 그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코흘리개들은 공장 구석에 처박혀 몽롱한 상태로 하루를 보낸다.
사실 주민들이 아편의 해악을 알고 있다 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아프간 북부 지역에선 약과 음식보다 아편을 구하기가 훨씬 쉽다. 이런 환경에서 온 가족이 중독자가 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아프간 북부 마자르-아-샤리프에 거주하는 누라가 칸(40)은 진흙을 이겨 만든 집에서 아내 및 네 아이와 함께 정기적으로 아편을 피운다.
좁다란 그의 단칸방 바닥에는 주사기와 연초말이용 휴지들이 널려 있다.
아편 흡입으로 눈이 벌겋게 충혈된 칸은 “이게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건 알지만 우리 모두가 이미 중독된 상태라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아편을 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아우성을 지르고 울음보를 터뜨린다. 최근 칸의 일가족 전원은 중증 중독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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