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업체가 ‘용도변경’ 시와 거래, 일부 유닛 저가 임대
▶ 운동방 등 편의시설 금지·쪽문만 출입 등 각종 제한
진 그린 도로시가 뉴욕시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 건물 앞을 걸어가고 있다. 렌트비 보조를 받는 그녀는 제 값을 주고 입주한 사람들이 무료로 사용하는 운동실에 출입할 수 없다.
■ “돈 적게 낸다고 2등 시민 취급 못 참겠다”
인간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린다. 선택은 취사, 즉 주어진 대상물들 가운데 최상의 것을 골라잡고 그보다 가치가 낮은 것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작업이다. 선택이란 결국 가치의 저울질이라는 내재된 절차를 거쳐 드러나는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내리는 선택을 지켜보면 당시 상황에서 그가 추구하는 가치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결정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 결정은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선택은 가치비교의 저울질에서 출발한다. 이 남자 혹은 저 여자를 꽉 잡아야 할지 아니면 서둘러 놓아주어야 할지, 회사를 때려치우는 편이 나을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 옳은지 각자가 처한 상황과 위치에 따라 저울질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저울질을 할 때 양쪽가의 저울접시 위에는 선택에 동반되는 대가와 보상이 각각 올려진다. 쉽게 말해 이익과 불이익, 유리와 불리의 무게를 잰다.
뉴욕에 거주하는 진 그린 도로시는 최근 자신이 내린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반신반의하고 있다.
자신의 선택에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질 경우 지난번과 다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 단언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저울추의 양쪽에 경중을 가리기 힘든 대등한 가치의 내용물이 올라가 있다는 얘기다.
그는 얼마 전 뉴욕시 민권위원회에 자신이 거주하는 맨해턴의 아파트 개발업자가 세입자들을 차별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집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맨해턴의 고층 아파트에 입주했다면 돈푼이나 있는 사람으로 분류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연방 정부가 공인하는 저소득자이다.
이처럼 수입이 신통치 않은 그가 맨해턴의 번듯한 고층 아파트 건물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은 세제혜택과 건물 신축에 필요한 도시계획상의 부지 용도변경을 얻어내기 위해 주택 개발업자가 시 정부와 합의한 거래 덕분이었다.
다시 말해 아파트 개발업체는 정부 당국이 도시계획상의 규제를 풀고 맨해턴 주거구획지 인근에 대형 주거용 건물 신축허가를 내줄 경우 새로 지은 아파트 가운데 일부를 저소득층에 싼 값으로 임대한다는 조건을 제시, 승인을 받았다.
고층 아파트 건물을 저소득자에게 저가로 임대한다는 발표가 나가자 입주신청자들이 밀려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파트 개발업자는 정부로부터 렌트 보조를 받는 저소득자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입주 후 월 1,000달러가 넘는 관리비까지 면제를 받는 저소득 렌트 컨트롤 세입자들은 ‘시장가격’을 지불하고 들어오는 세입자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운동방을 비롯, 아파트 단지 내 고급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 골자다.
도로시는 입주 신청 당시 이 같은 단서조항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무료 이용은 금지되더라도 ‘시장가격’으로 사용료를 지불한다면 입장이 가능해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발업주의 태도는 완강했다. 당초 계약대로 렌트비를 보조받는 세입자들에게 운동실을 비롯한 편의시설은 출입금지 지역이라고 못 박았다. 어차피 내는 돈이 다른 데 같은 건물에 산다고 해서 동등한 대우를 기대하는 것은 억지라는 얘기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과 같은 층에 저가 세입자들이 입주한 사실을 노골적으로 못마땅해 하는 ‘실가’ 입주자들이 적지 않은 판에 편의시설 제한마저 풀어놓을 경우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도로시는 “내 집에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결국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저가 세입자들과 함께 뉴욕시 민권위원회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뉴욕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경제적 계층에 속한 납세자들이 섞여 사는 고층 아파트가 더러 있다.
개발업자는 세금혜택과 주거용 고층건물 건축이 금지된 부지의 사용 승인을 따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밑지지 않는 선택이다.
저소득 세입자의 입장에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맨해턴 중심가에 고급 아파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남는 장사’다. 하지만 저울의 다른 한쪽 접시 위에 자존심이 올라가는 순간 저울추의 균형이 흔들린다.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에 위치한 고층 콘도 ‘코트니 하딩’의 렌트 컨트롤 적용 세입자들은 도어맨이 배치된 로비와 건물 정문을 이용하지 못한다.
이 건물의 출입문은 콘도 소유주들을 위한 로비의 정문과 저가 세입자들을 위한 뒤쪽의 ‘쪽문’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쪽문을 흔히 ‘푸어 도어’(poor door)라 부른다. ‘가난한 자들의 문’이라는 뜻일 터이다.
정문에는 제복을 차려 입은 도어맨이 배치되어 있고 로비에는 우아한 실내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반면 눈에 안 띄는 곳에 자리 잡은 건물 뒤쪽의 ‘푸어 도어’를 나가면 곧바로 버스 정류장이다.
물론 푸어 도어도 저소득층 세입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사전에 합의된 ‘거래’이지만 실제로 당하고 보면 견디기 힘든 모욕감이 따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업주 측은 당당하다.
도어맨의 월급은 콘도 주인이 달마다 내는 관리비에서 지급된다. 흔히 CAM라 불리는 관리비는 거의 예외 없이 저소득자들이 내는 렌트비를 큰 폭으로 웃돈다.
개발업주들은 도어맨이 배치된 정문과 로비는 그의 월급을 대는 콘도 소유주들에게만 개방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맨해턴에는 아예 저소득자들을 위한 별채의 부속건물을 거느린 고층 아파트 건물도 여럿 있다. 두 건물은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지만 출입구가 다르기 때문에 실가 입주자들과 저가 세입자들이 서로 뒤섞일 일은 별로 없다. 하지만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소유주협회에서 인근 지하철 역까지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가 매일 별채 건물 세입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자 본채 입주자들 가운데 볼멘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듣기 거북한 ‘가진 자’의 불평과 불만을 접할 때마다 별채 거주자들의 심기도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별채 아파트에 입주한 한 남성은 “월 700달러에 이런 방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유야 어쨌건 저소득자들을 배려해 준 개발업자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본채는 어차피 나와는 관계없는 딴 세상”이라는 그는 “다시 선택을 하라고 해도 나는 입주 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쾌적한 아파트에서 2등 시민으로 차별대우를 받는 것보다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싸구려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견디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선택인 셈이다.
저소득자들 사이에서도 렌트보조 혜택을 받아가며 안락한 아파트에 거주하려면 ‘푸어 도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견해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쉽지 않은 선택이지만 대부분의 없는 자에겐 거부하기 힘든 거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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