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중 위한 눈요기나 힘자랑 아닌 요란스런 종합 엔터테인먼트 무대 ‘여성의 역할 확장’ 메시지 담아 수익금은 비영리단체에 전액 기부
■ 비영리 단체 ‘CLAW’의 이색 이벤트
지난 2월 14일 LA 웨스트레익에 위치한 부트레그 디어터에서 딱히 무어라 꼬리표를 붙이기 힘든 이벤트가 펼쳐졌다. 프로레슬링만큼이나 야단스러울 정도로 어수선하고, 전통적인 연극과는 꽤나 거리가 있어 보이는 밸런타인스 데이의 이색적인 볼거리였다. 이벤트를 기획하고 주최한 곳은 비영리 단체인 CLAW의 LA지부였다. CLAW는 여성 팔씨름 협회인‘컬렉티브 오브 암 레슬러스’(Collective of Arm Wrestlers)의 약자다. 간단히 말하자면 CLAW의 LA지부가 주최한 여성 팔씨름 대회였다.
하지만 아마존의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우람한 몸집의 여성들이 관중 앞에서 팔의 근력을 겨루는 단순한 힘자랑 대회는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성들의 눈요기를 위해 아슬아슬한 의상을 차려 입은 팔등신 미녀들이 힘자랑을 빙자해 훤히 드러난 몸매를 과시하는 뻔한 ‘관음성’ 행사도 아니었다.
이 행사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CLAW에 대한 막연한 편견부터 떨쳐내야 한다.
CLAW는 2008년 버지니아주 샬롯빌에서 조직됐다. 창립자인 제니퍼 호티 티드웰(40)은 고정관념으로 묶인 여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단체를 만들었다.
어쩐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유리 동물원’에 나오는 여주인공 로라의 ‘홀로서기’ 노력을 떠오르게 만드는 설립 취지다.
한 아이의 어머니로 최근 남편과 사별한 티드웰은 여성의 역할에 대한 뿌리 깊은 사회적 통념을 깨부술 이벤트를 구상한 끝에 팔씨름 대회로 낙착을 보았다.
근력자랑은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에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의 팔 힘겨루기는 어찌 보면 가장 ‘여성스럽지 못한’ 경쟁이다.
여성이 신체적 강건함을 공공연하게 자랑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우람한 이두박근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측정하는 척도와는 거리가 멀다.
티드웰은 여성들이 물리적 힘을 뽐내는 행사는 그 자체로 ‘여성영역 확장’이라는 사회적 메시지와 함께 오락성을 지닌 특별한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대회의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형식을 취한다면 존재 의미 역시 배가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음을 정한 그녀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 일사천리로 여성 팔씨름대회 준비를 마쳤다.
첫 번째 대회는 샬롯빌에 위치한 한 식당의 비흡연 구역에서 치러졌다.
사실 티드웰은 1차 대회에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저 이런 단체가 조직됐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기 위한 수순 밟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70여명의 출전자가 몰려 창립식을 겸한 첫 대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CLAW의 소문은 빠른 속도로 번져갔다. 샬롯빌을 본부 삼아 시카고와 허드슨 밸리에소 지부가 결성됐다.
졸지에 전국 여성 팔씨름협회 회장의 감투를 쓰게 된 티드웰은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CLAW 공식 웹사이트를 만들어 지부들과 공유했다.
현재 CLAW는 전국에 23개 지부를 거느린 비영리 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조직이 커지면서 대회 규모도 업그레이드됐다.
일정한 회비를 납부하는 리그 소속 단체들을 위해 CLAW는 토너먼트와 지역 최종전 그리고 전국 챔피언십 대회인 수퍼 CLAW를 개최한다. 올해 수퍼 CLAW는 오는 10월 워싱턴 DC에서 열린다.
대회는 유료행사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기본요금을 지불하고 입장한 후 경주마에 베팅을 하듯 팔 힘이 가장 세어 보이는 여성 선수에 돈을 건다.
주로 극단 멤버들인 대회 고정 출전선수들은 한바탕 요란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관중에게 사전 품평기회를 주는데 이 과정에서 강한 행위예술과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다. 아닌 말로 종합적인 무대 엔터테인먼트인 셈이다.
그러나 각본대로 짜 맞추기보다는 즉흥성을 강조해 출전자들과 관중이 함께 어울리는 분위기를 유도하는데 주력한다.
대회의 기본요금 수입은 CLAW가 임의로 정하는 비영리단체에 전액 기부된다.
CLAW LA지부의 밸런타인스 데이 경기는 CLAW가 주최하는 다른 팔씨름대회에 비해 퍼포먼스의 성격이 훨씬 짙다.
CLAW LA지부는 무대감독이자 대학 연극반 지도교사인 아만다 맥레이븐에 의해 2010년 설립됐다.
샬롯빌에서 티드웰을 도와 협회 결성을 거들었던 맥레이븐은 2010년 LA지부를 설립할 당시 극단 관계자들과 독립적인 여성 팔씨름선수들을 광범위하게 접촉해 고정 출연진을 구성했다. 여기에 일반 출전자들이 보태져 대회가 진행된다.
맥레이븐의 목표는 출연자, 혹은 출전자 전원이 아무런 부담 없이 서로 어울리며 이제까지 자신의 세계로 믿고 지내던 ‘좁은 상자’ 밖으로 걸어 나와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하도록 거드는 것이다.
LA지부의 첫 ‘대회’는 한마디로 야단스러웠다.
그러나 부트레그 디어터를 찾은 대부분의 관중은 난장판 같으면서도 진한 메시지를 담은 이벤트에 관심을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팔씨름 극단의 고정 출연자도 여러 명 생겼다. 크리스티나 에스트라다(26)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고참 뱃사람들조차 얼굴을 붉힐 정도로 걸쭉한 욕설을 입에 달고 다니는 막노동판의 ‘인간 굴착기’ 디글러가 그녀의 무대 캐릭터다.
퍼시픽 내셔널 트랜스포테이션의 미수대금 수금원이 본업인 그녀는 “좋은 동기를 위해 무대 위에서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미친 듯이 연기를 하며 힘자랑을 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고 만족해 했다. 그녀가 처음 출전한 대회는 오페라 델 에스파시오의 기금모금 행사로 진행됐다.
LA지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티드웰 회장은 고정 출연자들에게 “팔씨름 대회가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 것”을 늘 강조한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퍼포먼스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이유다.
지난번 LA 밸런타인스 대회의 우승자는 알렉스 프리드만(28)이었다. 러시아 출신 건달녀의 캐릭터를 연출한 프리드만은 전문가들로부터 ‘프로 전향’을 제의받은 여자 천하장사다.
대회 전 1주일간 알렉스를 훈련시킨 프로 팔씨름꾼들은 그녀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들의 리그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프리드만은 프로 전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격은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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