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대 경영체제에 돌입한 이태리안경의 경영인들은‘기업’이 아닌‘가업’으로서 한인사회의 시력건강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사진 가운데가 창업주 김종영 회장, 오른쪽이 맏아들 김지영 사장, 그리고 왼쪽은 손녀 제니스 김 검안의. <이우수 기자>
이태리 안경은 ‘기업’이 아닌 ‘가업’입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한인들에게 최고 품질의 맞춤형 안경을 제공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LA 한인타운 버몬트와 올림픽 코너에 위치한 이태리 안경은 30년 넘게 한인 커뮤니티의 시력건강을 책임져온 안경전문 기업이다. 올해로 창립 33주년을 맞은 이태리 안경 창업주 김종영 회장에게 최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 생겼다. ‘안경’ 하나만을 고집하며 외길인생을 걸어온 김 회장의 가장 큰 숙원인 ‘3대 경영’이 결실을 맺은 것. 지난 5월 일리노이 검안대학원을 졸업한 큰 손녀 제니스 김(27·한국명 혜인) 검안의가 합류함에 따라 이태리 안경은 이제 3대에 걸친 하나의 가업문화를 뿌리내리고 있다. “3대에 걸친 가업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유산이다”고 강조하는 김 회장은 “큰 결심을 한 손녀는 소중한 가족이자 직장 동료”라고 말했다.
창업주 김종영 회장부터 아들 김지영 사장, 그리고 손녀 제니스 김 검안의까지 3대 경영에 나선 이태리 안경의 남다른 가업문화와 자부심을 들어봤다.
창업주 김종영 회장과 아들 김지영 사장에 손녀 제니스 김 검안의 합류
1979년 창업 이래 최고품질 맞춤형 안경 생산 판매... 연매출 4천만달러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창업주 김종영 회장에게 안경은 세상을 밝게 하는 거울이자 김 회장의 57년의 철학이 그대로 묻어난 ‘믿음’이다. 고종사촌의 소개로 부산에서 안경점 심부름을 해오던 김 회장은 23세인 지난 1955년 부산 광복동에서 제일양행이라는 이름으로 안경사업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이전에는 ‘문교월보’라는 월간지 편집인으로 활동한 언론인이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졸지에 실직자로 전락해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안경사업이 평생 천직이 돼버렸다”고 안경과 맺은 남다른 인연을 설명했다.
이후 서울 충무로 지역에서 이태리안경 상호를 걸고 장사하던 김 회장은 해외 유명 안경테 수입에 대한 정부 규제와 비리에 염증을 느끼고 정직한 사회에 대한 이상향을 그리며 78년 10월 알래스카로 도미했다. 안경만을 고집해온 김 회장은 이후 LA로 이주해 1979년 10월28일 현재 부지에 ‘이태리 안경’을 설립해 본격적인 안경사업에 뛰어들었다.
33년간 고객들과 안경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소통’을 나눈 김 회장과 아들인 김 사장은 1997년 주류시장 개척을 위해 올림픽-웨스트모어랜드 코너에 렌즈 만드는 공장을 설립하고 무테안경, 프리폼 안경, 렌즈본드 안경 등 전 세계에서 최고 품질의 맞춤안경을 제작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완벽에 가까운 품질경영을 추구하는 창업주 김 회장의 기업정신을 반영 하듯 3대 경영에 나선 이태리 안경은 이제 대형 안경판매점이 아닌 종업원 250명, 연매출 4,000만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태리 안경은 ‘기업’이 아닌 ‘가업’
김 회장에게 있어 이태리 안경은 기업이 아닌 가업이다. 그는 “기업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가업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소중한 유산이다”며 “이태리 안경이 100년 이상 한자리에서 최고 품질의 안경과 렌즈를 제작하는 것이 또 다른 목표이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지영 사장은 한국에서부터 선친의 어깨너머로 안경을 배우고 보면서 성장했다. 그리고 1988년 김 사장이 일리노이주 검안의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선친이 세운 이태리 안경의 운영에 본격 합류했다. 이후 김 사장은 20년 넘게 판매 및 안경 관련 제품 구매 등 제반업무를 두루 익힌 뒤 자연스럽게 경영인으로 성장했다.
김 사장은 “일본 기업들의 장인정신을 항상 부러워하던 선친의 희망은 언제나 3대에 걸쳐 안경점을 운영하는 것이었다”며 “큰 딸 아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3대 경영에 뛰어든 제니스 김 검안의는 현재 코리아타운 플라자 샤핑몰 내 매장과 아울릿 매장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김 검안의는 원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안경 및 가업승계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3대 경영이 부모님의 희망사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며 “원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하버드 웨스트레익 고교를 거쳐 미 최고의 여대로 손꼽히는 바너드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며 의사를 꿈꿔온 김 검안의가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을 할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방학을 이용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도와 드리면서 안경과 커뮤니티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갖고 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며 “일반 기업인들과 아버지는 다르다는 것을 느낀 뒤 검안의가 돼 가업을 잇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설명했다.
3대에 걸친 가족이자 직장 동료인 이들에게 ‘안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하나의 공통 관심사가 됐다.
김 검안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집에서도 안경 이야기만 하는 것이 참 지겨웠는데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안경 이야기만 하게 되더라”며 “50년이 넘게 온 가족의 관심사는 안경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사이 대기업들이 이태리 안경을 인수하기 위해 수많은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는 이태리 안경의 렌즈 기술이 세계적 수준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김 사장은 “기업들이 생각지도 못한 거액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대기업에 안경점을 팔 경우 더 이상 가업이 아닌 기업으로 전락하는 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며 “이태리 안경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기업이기보다 가업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고객 중심에서 생각하는 이태리 안경
창업주 김 회장은 10년이 넘도록 새벽 6시가 되면 가게 문을 직접 여는 것은 물론, 하루 14시간 이상 안경점과 공장을 오가며 오직 최고 품질의 안경만을 생각한다. 김 사장도 선친의 개척정신과 경영철학을 본받아 안경을 통한 부의 축적보다 고객의 시력 건강을 지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안과는 눈에 이상이 생기고 아파야 가지만 검안과정에서 본인이 모르는 문제를 찾는 경우가 많다”며 “시력측정 과정에서 눈병을 조기에 발견해 치료를 받고 건강해 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보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33년간 ‘저희가 아는 것은 안경뿐’에서 ‘이태리 안경이면 믿을 수 있다’는 고객 중심 경영으로 신뢰를 쌓아온 김 회장은 ‘천연수’가 나오는 가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얼마 전 경영 일선에 합류한 손녀에게도 안경사업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하기보다 고객에 대한 성실과 품질경영을 항상 강조한다. 김 회장은 “연중 내내 지하수가 나오는 것처럼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최고 품질의 안경만을 추구하는 이태리 안경점이 되도록 큰 손녀가 잘 경영할 것으로 믿는다”고 확신했다.
<김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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