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대학이 올해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병실의 평균 소음수준은 30데시벨을 훌쩍 넘는다. 30데시벨은 속삭임보다 약간 큰 소리로 세계보건기구(WHO)의 병실 권고치에 해당한다.
온갖 경보음·주사액 주입 기계음·전화 벨소리에
시도 때도 없이 깨워 주사·혈압 재기·피 뽑기…
결국 치료효과 반감… 병원들 개선노력 시작 다행
병원은 시끄러운 곳이다. 병을 치료하는 공간일 뿐, 환자가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장소는 아니다. 입원 경험이 있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병상을 지켜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병원이 시끄럽고 복잡한 곳이라는데 주저 없이 동의한다.
얼마 전 신부전증 합병증세로 뉴욕의 한 병원에 입원한 여성은 “여기서는 절대 몸이 나아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장주변에 체액이 차올라 가슴통증을 일으킨 그녀는 입원을 권하는 가족들과 하루 온종일 실랑이를 벌인 후에야 마지못해 병원으로 들어왔다.
지난해 두 차례의 입원에 이어 올해 또다시 병실에 몸을 누인 여성 환자는 “나도 치료를 받고 몸 상태가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병원이 병을 키우는 곳’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입원치료는 피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새처럼 자그마한 몸집을 지닌 그녀는 “경보음으로 소란한 병실에서는 잠을 자기 힘들고, 일단 잠이 들었다 싶으면 간호사가 와서 억지로 깨운 뒤 약을 주고, 혈압을 재고, 피를 뽑는 등 수선을 피우기 때문에 도대체 숙면을 취할 수 없다”고 투덜댔다. 이 여성은 통증이 엄습하자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에겐 귀와 입이 있다. 소음을 듣는 귀만 달린 게 아니라 불만을 토로할 입도 갖고 있다. 병원의 소음에 노출된 입원환자들은 벌써 수년째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들의 불만은 거의 대부분 무시됐다.
병원 관리자, 의사, 간호사와 다른 스태프들은 조용한 환경보다 병실에 설치된 숱한 경보기, 부저와 환자들에 대한 잦은 체크를 통한 정보수집이 치료에 훨씬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료비 상환을 환자의 만족도와 연결시킨 새로운 정책이 나온 뒤 병원들도 점차 태도를 바꿔가고 있다.
환자들이 견뎌내야 하는 소음은 거의 귀가 먹먹할 정도다.
시카고 대학이 올해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병실의 평균 소음수준은 30데시벨을 훌쩍 넘는다.
30데시벨이면 속삭임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치에 해당한다. 반면 최대 소음은 전기톱 수준에 육박한다.
당연히 병실이 시끄러울수록 환자가 입는 ‘피해’도 커진다. 가장 조용한 병실의 환자에 비해 한 시간 정도 잠을 빼앗긴다는 통계치가 이를 입증한다. 잠을 빼앗긴 매 시간마다 환자의 혈압은 평균 6포인트가 올라간다.
병원을 휩싸고 도는 소음이 출처는 다양하다. 얼음기계의 아이스 큐브 방출음, 세탁물 카트의 바퀴가 내는 잡음, 정맥주사액 주입펌프의 삑삑대는 신호음, 환자의 상태를 의논하는 의사들의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연구원들은 병원의 소음 하나 하나를 추출해 이들이 잠든 환자의 뇌파와 심장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각 개의 소음으로 인해 환자가 받는 영향은 수면의 단계에 따라 다른 것으로 나타났으나 모니터의 전자 신호음과 주사액 주입기계음, 전화 벨소리가 이들을 일관되게 자극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시끄러운 외부 소음으로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환자의 심장 박동수는 올라간다.
병원 소음에 대한 환자와 가족들의 불만이 가중되자 약물주입 기기와 모니터 기구 제조업체들은 이들의 요구에 더 이상 귀머거리 시늉을 하지 않았다.
업계는 의료기구들이 내는 소음에 관한 연구를 실시하거나, 연구 단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해가며 수 개의 그룹들과 협력해 환자 친화적이자 수면 친화적인 상품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일부 기업들은 병원의 무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들은 병실이 아니라 담당의와 당직 간호사들에게만 전달되는 모니터와 펌프, 간호사 호출 시스템 등을 고안했다.
초기 무선화 노력이 유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기업과 병원은 소음을 줄인 새로운 디자인의 상품으로 전환하기를 꺼려한다. 이 때문에 의료기구 경보음에 대한 업계 표준을 변경하는 작업은 매우 더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주사액 주입펌프를 비롯한 의료기구 생산업체인 케어컨퓨전의 부사장 팀 반더빈은 “무선 기술을 이용해 환자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 조용한 펌프를 만드는 건 가능하지만 병원의 무선 시스템이 붕괴될 경우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정숙한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시도의 최대 장애물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의사와 간호사, 병원 스태프 등은 한 밤중이나 낮잠 시간대에 환자를 깨워 혈압을 측정하고 체온을 측정하거나 피를 뽑는다. 혈압이나 체온 측정은 몇 시간 쯤 뒤로 미뤄도 전혀 문제가 없는 비응급 절차다.
환자 중심의 진료를 위해 의료기관들과의 협력하는 비영리기구 플레인트리의 사장 수잔 B. 프램프턴은 “환자를 위한 최상의 접근법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의료진이 머리를 맞대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에게 편리한 시간에 맞춰 일을 하려 드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일부 건강보험기구들은 전국의 병원들을 대상으로 ‘침묵의 소리’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들은 소음제거 팀을 구성해 의무적인 ‘침묵의 시간’을 준수하도록 장려하고 마치 거리 신호등, 혹은 귀처럼 생긴 소음측정기 사용을 권장한다.
측정기는 용납 가능한 소음 수준에서는 푸른색, 경계수위로 올라가면 노란색, 용인 가능한 범위 위로 올라가면 빨간색으로 변한다.
병원 체인인 뉴저지 헬스케어 시스템은 플레인트리의 지원 아래 단순히 소음을 줄이는데 그치지 않고 환자들로부터 병원 측이 취할 수 있는 수면 개선조치에 관한 의견을 수집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모든 입원 환자의 수면패턴을 일일이 물어보고 원할 경우 빛을 차단하는 마스크나 따듯한 담요, 향기치료법 등을 제공한다.
또 환자가 선호하는 수면방식을 스태프들이 숙지할 수 있도록 병실 문에 붙여두고, 담당 간호사에게 매일 숙면상태를 확인토록 한다.
이런 방법들이 성공적으로 끝날 것인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수면부족과 소음이 환자가 받는 ‘치료의 질’을 결정적으로 해친다는 점이다.
하버드 메디칼 스쿨 수면의학국 조교수인 오페우 벅스턴 박사는 “충분한 잠은 건강회복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벅스턴 박사는 “잠이 부족하면 건강회복에 차질이 빚어진다”며 “소음과 수면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지 꼭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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