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증 정자 전염성 질환여부 검사 의무사항 아니고 한 사람이 여러번 기증하는 경우 많아 문제 더 심각 업계선“엄청난 비용 때문 완벽검사 불가능” 주장
▶ 인공수정 출산 아기들 치명적 질병에 시달려
기증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잭슨은 유전성 낭포성 섬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오클라호마 유콘에 거주하는 샤린과 브라이언 크레치마 부부는 두 번째 아기를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와 희망이 실망과 좌절로 바뀌는 쓰라린 시행착오를 무수히 반복한 후 이들은“정자 기증자를 찾아보라”는 담당의사의 권고를 따르기로 했다. 이때부터 크레치마 부부는 그들이 원하는 유형의 기증자를 찾아내기 위해 전국에 산재한 정자은행들의 웹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꼬박 1년간의 탐색 끝에 크레치마 부부는 보스턴 소재 뉴잉글랜드 크라이어제닉 센터에서 맞춤한 기증자를 발견했다. 이들이 직접 접촉한 크라이어제닉 센터의 관계자는 문제의 기증자는 “가정을 가진 남성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확인해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남성의 건강기록이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다는 사실이었다. 크라이어제닉 센터는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유전자 이상 여부를 가리기 위해 모든 기증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실시한다고 밝혀 놓았다.
마음을 정한 샤린은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고 2010년 4월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잭슨으로 이름 지어진 아기는 하루가 지나도록 ‘배설’을 하지 못했다. 불길한 조짐이었다. 결국 잭슨은 유전성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긴급 진단과 함께 생후 48시간 만에 수술실로 들어갔다. 간호사인 샤린 크레치마(33)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당시의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샤린은 “처음엔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며 “정자은행에서 분명히 유전자 검사를 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사 결과 잭슨은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놀랍게도 샤린 역시 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충격적인 일은 기증자 역시 낭포성 섬유증 유전자 보유자일 뿐 아니라 크라이어제닉 센터가 그의 정자를 무려 20년 전 다른 곳에서 ‘떨이’로 사들였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크레치마의 경험은 그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는 ‘남성’에게서 물려받은 심각한 유전자 결함으로 고통을 당하는 어린이들이 한두 명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심장결함은 물론 척추성 근위축증, 제1형 신경섬유종증과 남자 아이의 가장 흔한 지적장애인 취약 X증후군 등이 기증 정자의 유전자 이상이 초래하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동일 정자 기증자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가족을 서로 연결해 주는 웹사이트 ‘도너 시블링 레지스트리’(Donor Sibling Registry)를 개설한 웬디 크레이머는 “이미 이에 관한 수백 건의 사례를 찾아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기증 난자에도 유전자 결함 위험이 없지 않다. 그러나 기증 정자의 위협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정자 기증자가 유전자 질환을 지닐 위험이 더 높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잠재적으로 50명, 100명, 혹은 150명의 ‘생물학적 친자’를 둘 수 있기 때문에 결함 유전인자를 퍼뜨릴 매개체의 범위를 대폭 키울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유전자 결함을 지닌 정자 기증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온라인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과 함께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매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기증 정자를 이용해 태어나는지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나오지 않은 상태지만 적어도 100만명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연방식품의약국(FDA)은 정자 기증자들의 전염성 질환 여부를 검사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나 유전자 검사를 의무화하지는 않았다.
그나마 대형 정자은행들은 가족 병력을 지닌 기증자를 대상으로 유전자 질환 검사를 실시할 것을 권장한 미생식의학협회의 권고를 따르고 있다. 이때에도 기증 정자가 아니라 기증자에 대한 검사가 이뤄진다.
비판론자들은 유전자 검사를 의무화하고 그 대상도 전체 기증자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크레이머는 “이제 200달러 정도면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시대”라며 “정자은행은 그 어떤 이유로건 이런 기본 서비스 제공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미생식의학협회 공공업무 디렉터인 션 팁톤은 “완벽한 검사란 불가능한 작업”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생식에는 고유한 내재적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며 여기에 관련한 모든 위험과 불확실성을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전자 검사 기술이 개선되고 있고, 정자은행들 역시 이 같은 기술적 진보를 충분히 활용할 것이지만 모든 질병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하려면 감당하기 버거운 비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완벽한 검사가 가능하지만 수지타산을 맞추기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유전자 검사 의무화에 대한 업계의 반대가 완강한 데다 기록보관에 관한 규정마저 없는 상황이라 유전자 질환 발생건수를 집계하기 어렵고, 설사 발병 사실을 알았다 해도 기증자나 피기증자 가족에게 이를 알릴 방도가 없다. 기증 유전자를 사용한 측은 출산, 혹은 발병 사실을 정자은행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특정 기증자의 정자에 유전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로 인해 발병 이후에도 해당자의 유전자가 계속 판매되곤 한다.
캘리포니아의 샌라파엘에 거주하는 맥스 잭슨(18)은 치명적 유전성 심장질환인 비후성심근증(HCM)을 앓고 있다.
잭슨은 웬디 크레이머가 개설한 ‘도너 시블링 레지스트리’를 통해 최근 자신과 동일한 정자 기증자를 생물학적 아빠로 둔 ‘형제’ 8명이 HCM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도너 시블링 레지스트리’ 덕에 정자은행은 기증자를 추적, 검사를 실시했고 그가 결함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래퍼를 꿈꾸어 온 잭슨은 그에게 몹쓸 유전병을 물려준 생물학적 아버지와 대면했다. 처음 만난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내게 유전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의 친아들 역시 HCM 환자였다. HCM은 심장근육이 두꺼워져 수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심장발작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이 병에 걸린 환자의 평균 기대수명은 37세에 불과하다.
잭슨은 심장박동수를 일정한 수준 아래로 유지하기 위해 약을 복용중이다. 그는 “이 병으로 인해 얼마나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는지 깨달은 뒤에 마음을 비웠다”며 “HCM 환자는 달리기만 해도 즉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크레치마 부부는 뉴잉글랜드 크라이어제닉 센터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정자은행이 크레치마 부부에게 판매한 정자는 와이오밍의 로키 마운틴 크라이어뱅크가 20년 전에 냉동해 보관해 오다가 수년 전 폐업을 하면서 뉴잉글랜드 크라이어뱅크에 ‘땡처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샤린 크레치마는 언젠가 아들 잭에게 그가 겪어온 시련과 고통은 불필요한 것이었으며 사전에 예방했어야 했던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며 “아이의 고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력감을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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