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 헬스케어 파운데이션이 지난 2월 LA에서 열린 성인영화상 시상식 행사장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지난 2010년 HIV 감염 판정을 받은 포르노 배우 데릭 버츠.
‘천사의 도시’와 포르노 산업은‘궁합’이 잘 맞았다. 이름만 보아서는 어울릴 법하지 않은 둘 사이의 ‘공생관계’는 1988년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전국 최초로 포르노 산업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면서 본격화됐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성인영화 제작은 매춘 금지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는 이정표적인 판결을 내림으로써 법의 외곽지대에 머물던 포르노 제작사들을 양지로 끌어냈다. 주 대법원의 결정으로 합법적 영업기반을 구축한 포르노 산업은 샌퍼낸도 밸리의 복합 상업단지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했다.
LA는 포르노 업계에 관대했다. ‘음란산업’이라고 박대하지 않았고 제도적인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다.
더구나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웃을 끼고 있어 배우와 스태프 등 ‘필수 인력’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약속의 땅’이었다.
LA는 주류 영화업계 진출을 꿈꾸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배우 지망생들과 카메라맨, 음향담당 기술자 등으로 차고 넘치는 도시다.
하지만 제아무리 탁월한 재능이 있다 해도 맨손으로 높디높은 할리웃의 벽을 넘어서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돈과 명예를 좇아 불나방처럼 몰려든 영화 지망생들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생계용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이들이 발을 디딘 곳이 포르노 업계였다.
성인영화 업체들은 그들에게 합법적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필요 인력과 시장을 내어준 LA에 나름대로 보답했다.
금융위기 이전인 10년 전 자료에 따르면 LA 포르노 산업의 연간 시장규모는 40억달러. 이들은 LA시에 적지 않은 지방세를 납부할 뿐 아니라 배우와 메이컵 아티스트, 카메라 크루 등으로 매년 평균 1만~2만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경제 기여도가 제법 크다는 얘기다.
이렇듯 원만하게 돌아가던 ‘천사의 도시’와 포르노 업계 사이의 관계가 최근 위기를 맞았다. 에이즈 활동가들의 지원사격 속에 지난 5일 발효된 이른바 ‘콘돔법’으로 인해 한랭전선이 형성된 것.
LA 시의회가 마련한 새로운 조례에 따라 성인영화에 출연하는 남자 배우는 3월5일 이후 의무적으로 콘돔을 착용해야 한다.
원래 LA 시의회는 이 문제에 소극적이었다. 포르노 업계가 불법적인 영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 경제 기여도 역시 무시 못 할 수준인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인영화 산업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남성 출연자의 의무적 콘돔 사용에 예민한 반응을 보여 왔다.
지난 90년대 말 에이즈 공포가 한창 기승을 부릴 당시 포르노 제작사들은 자발적으로 남자 배우들에게 콘돔 착용을 요구했다.
하지만 ‘콘돔 포르노’는 소비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했고, 매출은 말 그대로 ‘잠수’했다.
결국 포르노 업계는 ‘연장’ 사용을 포기한 채 남녀 출연자의 정기적인 에이즈 검사를 의무화하는 성병 예방체계 확립에 주력했고, 이에 따라 매달 거르지 않고 에이즈 검사를 받은 배우들만이 성인영화에 출연할 수 있게 됐다.
포르노 제작사들은 콘돔 사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불거질 때마다 ‘철저한 예방 시스템’을 앞세워 공세를 차단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남자 배우 데릭 버츠가 ‘업무 중’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포르노 업계가 자랑하던 예방체계는 균열을 일으켰다.
버츠의 감염 사실이 알려지자 콘돔 사용 의무화를 줄기차게 주장해 온 ‘AIDS 헬스케어 파운데이션’은 “성인영화 출연자들을 에이즈로부터 보호하고 소비자들에게 ‘안전한 섹스’를 권장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LA시 유권자들을 상대로 서명확보 작업에 나섰다.
이들이 콘돔사용 의무화안의 주민투표 상정에 필요한 유권자 서명을 확보하자 LA 시의회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채 이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AIDS 헬스케어 파운데이션의 마이클 웨인스타인 사장은 “출연자의 건강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성인영화가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 섹스만이 화끈한 성행위라는 위험한 메시지를 전달해 온 것 또한 사실”이라며 LA 시의회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웨인스타인은 그러나 LA에서의 승리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카운티 주민발의안을 통해 포르노 배우의 콘돔 사용 의무화를 LA카운티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IDS는 올해 11월 선거에 주민발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다시 유권자 서명 캠페인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포르노 업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경비가 훨씬 더 많이 들어가고 성가시긴 해도 LA시 경계 밖으로 나가 제작을 하거나 예외조항을 활용해 녹음과 방음장치를 갖춘 사운드 스테이지에서 작업을 하면 LA 시의회가 제정한 조례를 피해갈 수 있지만 LA카운티로 범위가 확대될 경우 아예 활동 근거지 자체를 옮기지 않는 한 콘돔 규제를 피하기 힘들다.
카운티 내 88개 시티 가운데 패사디나와 롱비치, 버논을 제외한 85개 시티가 몽땅 주무부서인 LA카운티 공중보건국의 관할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포르노 업계는 LA시의 콘돔법에 대한 법적 대응과 함께 상황이 악화될 것에 대비, 근거지를 남가주의 다른 카운티나 타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A를 대체할 후보지로는 매년 성인 영화제가 열리는 네바다가 1순위로 꼽힌다. 그러나 네바다주가 포르노 산업에 긍정적 반응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대형 카지노 업체들이 주식상장을 통해 ‘주류’로 편입된 이래 네바다 주민들은 동성결혼을 금지하고 마리화나 합법화 시도를 좌초시키는 등 이전의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벗어던지고 점차 보수성을 띠워가고 있다.
‘건전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과거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산업 다변화를 이루려는 네바다가 포르노 업계를 문전박대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설사 어렵사리 비집고 들어선다 해도 LA에서처럼 안정적인 인력 공급을 기대하기 힘들다.
LA 카운티를 제외한 남가주의 다른 카운티로 이주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벤추라 카운티의 시미밸리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포르노 산업의 진출을 차단하기 위해 이미 LA와 유사한 시조례안 제정에 착수했다. 밥 후버 시미밸리 시장은 “우리 타운이 포르노 공급지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편 포르노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그룹인 ‘프리 스피치 코올리션’의 다이앤 듀크는 성인영화 남성 출연자들을 권투선수에 비유해 가며 콘돔법의 부당성을 성토했다.
다이앤은 관중에게 볼거리와 대리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치고받는 권투선수들이 포르노 배우보다 훨씬 심각한 건강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대가 쓰러질 때까지 머리를 가격하는 것이 주업인 프로 복서들에게는 헤드기어 착용 등의 제한을 두지 않으면서 매월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 포르노 배우들에게 콘돔착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한 법적대응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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