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코리아IV 프레젠테이션에 선보인 이상봉의 ‘단청’주제 작품들
유독 뉴욕을 사랑하는 한국 디자이너 이상봉이 최근 뉴욕을 찾았다. 뉴욕패션위크의 ‘컨셉 코리아IV’ 프레젠테이션 9일 현장에는 400여명의 뉴요커와 패션 관계자들이 그와 악수하고 기념사진 한 장 찍으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왜 세계인들은 이상봉에게 열광할까?
▲뉴욕에 와서 영광
“나는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뉴욕에 왔다. 나에겐 새로운 시작임과 동시에 도전이다. 패션을 처음 시작하는 신인의 기분으로 출발한다”며 산뜻한 소감을 전하는 이상봉.이번 컨셉 코리아에는 이상봉, 도호, 스티브J & 요니P, 이주영, 손정완 5개팀이 참가하여 한국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 팀은 내년 2월 가을/겨울 뉴욕 패션위크에도 컨셉 코리아V로 참가하여 시즌 연속 뉴욕 시장을 공략한다.
“한국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뉴욕으로 가져왔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섞어 새로운 나만의 것으로 만들려 했다. 미국의 중심지인 뉴욕은 가장 액티브한 마켓 중 하나이다. 뉴욕콜렉션의 한 부분이 된 것은 영광이자 즐거운 경험이다.” 이상봉의 이번 디자인 주제는 단청이다. 한국 목조건물에 사용된 고유문양 단청을 현대적인 패턴과 프린트로 재탄생시켰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널리 알려진 이상봉을 이번 뉴욕패션주간에 직접 만난 바이어 및 패션
기자들은 그를 인터뷰 하느라 바빴다. 오는 23일까지 이상봉을 비롯 컨셉코리아 참가디자이너들의 작품은 첼시의 유명 쇼룸 에스터라이즈(Estarises)에서 바이어와 미디어를 만나고 있다.
이상봉의 옷들은 쇼룸 전시가 끝나면 유통망 정리기간을 거쳐 내년 1월부터 뉴욕의 각 최고 백화점에서 뉴요커들을 직접 만날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뉴욕에서 이상봉의 옷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9년 5월 오픈한 첼시
의 이나나 갤러리 한켠에 유명연예인의 의상을 빌려주고 판매하는 코너가 있다. 레이디 가가, 비욘세, 리하나, 이브, 켈리 로랜드, 캔 등 톱 가수와 드라마 주연급 배우들이 서로 빌려가고 수시로 이상봉의 옷을 입은 셀러브리티들이 매스컴에 등장한다. 테크닉과 디테일이 섬세하면서도 뛰어난 것이 새로운 동서양의 만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패션 온라인 1위인 스타일 닷 컴뿐 아니라 마리끌레르, 엘르, 보그 등 패션 잡지에 수시로 등장하는 이상봉의 옷들은 러시아와 중동 지방에서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1997년 파리 전시회에 ‘이상봉’을 처음 알리고 2002년부터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1년에 두 번, 벌써 20여번 이상을 갔다. 그러다보니 유럽에서 ‘이상봉’ 브랜드는 확고히 자리잡았다. 봄가을 패션 시즌마다 세계각국 바이어들의 대량주문이 이어지고 현재 14개국의 최고 백화점에서 팔리고 있다. 특히 모스크바와 두바이 지역에는 샵 인 샵 형태로 매장이 설치될 정도로 최고 대우를 받고 있다. 이번에 새로 출발한다는 각오로 뉴욕에 왔다는 이상봉은 지난 80년 중반 뉴욕을 자주 방문했는데 제일 처음 소호를 가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시절 자신의 호를 ‘소호’라 했고 이상봉 브랜드 안에 ‘소호’ 브랜드를 만든 적도 있다.
▲한글 프로그램 시작
“원래 한글을 넣은 디자인은 한번의 컨셉이었다. 그런데 다들 너무 좋아했다”2006년 2월 한글 패션 프로젝트가 파리 컬렉션에서 뜨면서 외국인들이 먼저 너무 아름답다고 열광했고 한글 패션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 문화를 알린 디자이너로 각인되었다. ‘장사익 선생이 일이 있어서 못온다는 편지를 자필로 써보냈는데 너무 아름다웠다. 그래서 이를 디자인에 응용하면 어떨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장사익체였고 이어 임옥상, 김용옥 글씨도 디자인에 응용되었다.
우리 문화를 알리자는 취지로 시작한 한글 프로젝트가 뜨자 한때 한국에서는 ‘이상봉이 한글 갖고 떼돈 번다’는 말이 돌았다. 정작 본인은 돈을 쓰고 있었다. 지금도 한글 작품으로 기부 행사를 많이 하고 있다. 한글로 인해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그는 끊임없이 한복, 자수, 전통가구, 산수화, 사군자, 샤마니즘, 이번엔 단청을 등장시켰다. 우리 문화를 재해석하여 세계화가 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고 그에 대한 보람을 느끼고 있다.
현재 이 한글 프로젝트는 금호건설 아파트 벽지, 다이어리, LG 샤인폰, 행남자기, 침구 이상봉 매종을 통해 계속 실현되고 있다. 그는 “이상봉의 라이프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대중에게 소개하고 전개하고 싶다. 1993년부터
라이프 스타일을 전개해 왔고 그런 것들이 기업간 콜라보레이션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패션의 완성인 향수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계획을 밝힌다. 한국적인 것을 다루는 그의 외모는 상당히 현대적인 점이 이채롭다. 박박 깎은 머리, 수염, 가장 앞서가는 블랙 패션을 수십 년 째 고수 중이다.그는 이번 뉴욕방문에서 패션 피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들 자체가 뉴욕에 동화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말 그대로 뉴요커였다”고 한다.
▲언제나 37세
마포중과 송곡고, 서울 예술대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한 그가 원래 하고 싶었던 것은 연극이다.‘연극에 대해 공부를 하고 무대가 좋았지만 그 무대가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좋아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디자인을 택했다’ 는 그는 무대에 대한 미련이 뮤지컬 ‘명성왕후’를 비롯한 각종 뮤지컬과 발레의 의상을 만들게 했다.국제패션디자인연구소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1983년 디자인 콘테스트에 입상하면서 디자이너로 데뷔한 이상봉은 1985년 명동 제일백화점에 이상봉 브랜드를 낸 것이 오늘날 디자이너 인생 30년의 화려한 꽃을 피우게 했다.
‘10분의 무대를 위해 3개월 전부터 준비한다’는 그는 패션쇼나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거의 날밤을 새느라 그 기간동안 집에도 못들어가며 일한다. 초창기부터 부인이 디자인을 도와주고 있고 현재 수명의 국내팀, 해외팀 디자이너, 패턴, 재봉사들이 한마음으로 일한다. 이상봉의 1남1녀는 일찌감치 영국과 미국 유학을 통해 아들은 남성복 디자이너로, 딸은 여성복을 공부한 후 대학원에서 패션 비즈니스를 전공, 현재 첼시의 이나나 갤러리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서 오늘이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디자이너로서 한계를 가장 크게 느꼈을 때가 37살 때였다. 그 이후 나이와 함께 내 감성이 무디어 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내 나이를 버리게 되었다.”디자이너로서 가장 힘들고 장벽에 부딪칠 때는 더 이상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 것. 그는 이렇게 실제 나이를 버림으로써 언제나 37세로 산다.“디자인은 여행, 연극,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영감을 받는다. 또 일상의 작고 소소한 것들까지도 영감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컬트에서 코미디까지, 음악은 힙합에서 재즈까지 특정장르만 고집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나를 가두거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이상봉, 그는 분야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부분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늘 깨어있어야 하고, 늘 도전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아주 작은 꿈부터 시작하여 일년 뒤, 이년 뒤 한 단계씩 올라왔다. 힘들고 어려워도 조금씩 설계하고 이뤄왔더니 어느새 세계무대에 나간 자신을 발견했다’는 이상봉은 “내가 뉴욕에 새롭게 도전했듯이 뉴욕은 많은 사람들이 꿈을 위해 도전하는 도시이다. 뉴욕의 한인들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세계의 중심인 뉴욕에서 열심히 살고 있고, 그 꿈을 뉴욕에서 실현하리라 생각한다. 뉴욕은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며 살아있는 도시니까......"그는 우리가 살고있는 이 뉴욕에서 다시 시작했다. <민병임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