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의 전통적인 양식에 변화가 일면서 이성 들러리를 세우거나 화동 역을 남성이 맡는 경우까지 나오고 있다.
클레어 해크니와 바비 스미스는 3년 전 결혼식을 올리면서 ‘장난기 어린 파격’을 연출했다. 우선 하객들에게 제공한 결혼식 피로연 선물이 색달랐다. 신랑과 신부가 준비한 선물은 들러리들을 모델로 한 꼭두각시 인형이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이색적인 선물에 참석자들은 관심을 보였고, 들러리들은 흐뭇해 했다.
화동대신 턱시도 차림 우람한 남성이‘꽃돌이’
하객들 처음엔 어리둥절… 곧 박수·웃음바다
이성친구 들러리도… 틀 깬 예식 조용히 확산
두 번째는 ‘인디아나 존스’의 테마에서 따온 ‘깜짝 쇼.’
결혼식이 시작되면 신랑, 신부보다 한발 앞서 깜찍스런 어린 ‘꽃순이’(flower girl)가 입장한다. 새로운 커플의 앞길에꽃잎을 뿌려주는 게 화동의 역할이다.
그런데, 그 날 화동의 입장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하객들은 엉뚱한 광경에 잠시 멈칫했다.
앙증맞은 ‘꽃녀’ 대신 턱시도를 차려 입은 우람한 체격의 청년이 화사한 패브릭 백을 들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신랑의 대학동창인 다나 베인이 패브릭 백(천으로 만든 가방)에서 생화 꽃잎을 한 줌씩 꺼내 허공에 뿌리며 신랑, 신부를 인도하자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하객들 사이에서 웃음의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관객들의 웃음을 촉발시키는 ‘인디애나 존스’의 최대 비결은 허를 찌르는 의외성이다. 예상을 뒤엎는 주인공의 엉뚱한 언행은 백발백중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한다.
해크니와 스미스의 ‘장난’은 신랑이 중절모에 채찍을 든 인디애나 존스로 분장한 채 나타난 것만큼의 ‘파격’ 효과를 끌어냈다.
제 아무리 ‘엄숙주의’를 못마땅해 하는 커플이라 해도 ‘신성한 결혼식’을 경망스런 유희로 만들려 들지는 않는다. 지나친 파격은 하객들에게도 부담스럽다.
따라서 결혼식 화동을 성인 남성으로 교체하는 것은 사회적 용인의 수위를 시험하는 아슬아슬한 고정관념 파괴시도라 할 수 있다.
결혼식을 마친 후 베인은 “내게 베풀어준 신랑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베인은 “만약 바비가 내게 음식 테이블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는 파격적인‘꽃돌이’ 역할을 맡김으로써 나를 여러 명의 친구 가운데 한명이 아닌 단짝으로 대우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식이 끝난 뒤 많은 사람들로부터 “참 예쁜 ‘꽃소녀’였다”는 농담 섞인 인사를 받았다며 쑥스런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10월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필리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 헨 페르난도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인 숀 홉킨스(37)를‘꽃동무’(flower fella)로 발탁했다.
홉킨스는 “그게 우리의 우정을 알리는 완벽한 방법”이라는 헨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이면서도 내심 신부님이 이런 파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신부님은 “재미있을 것 같다”며 의외로 선선히 승낙을 해주었다.
결혼식 날 가장 긴장한 사람은 신랑이나 신부가 아니라 ‘꽃 친구’ 홉킨스였다.
그는 “리번으로 둘러싼 양파모양의 바구니에서 명주로 만든 장미꽃잎을 꺼내려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고 털어놓았다. 전혀 예상못했던 ‘꽃남’의 등장에 하객들이 수군대자 그만 오금이 저렸던 것. 하지만 수군거림이 한바탕 웃음으로 바뀌자 홉킨스도 긴장에서 풀려났다.
드류 디폰조 막스(28)는 베인이나 홉킨스보다 훨씬 튀는 ‘꽃남’역을 맡았다.
지난 4월 그는 친구인 신랑의 부탁에 따라 감청색 양복 옷깃에 큼직한 꽃까지 꽃고 신랑신부의 ‘공동 애견’인 테리어와 함께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입장했다. 한 손엔 애완견의 가죽끈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양복 주머니 속의 꽃잎을 꺼내 뿌리는 그에게 하객들은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최근 ‘성별 역할’의 경계선이 흐려지면서 결혼식에서 이성 들러리를 세우는 신랑, 신부들이 늘어났지만 ‘꽃남’이 등장하는 경우는 아직도 흔하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의 결혼식 전문기획가(웨딩 플래너)이자 혼례식 전문인협회 설립자 겸 회장인 조이시 베커는 “요즘은 신혼부부들의 20%가량이 이성 친구들을 들러리로 세우고 있지만 꽃남은 아직 생소한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퍼처스 소재 SUNY 칼리지 사회학과 교수인 크리스 잉그램은 “결혼식에서의 성적 역할 분담이 무너지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이전에는 용인받기 힘들었던 방
식으로 혼인예식의 전형성을 뒤트는 커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꽃남’은 예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겠지만 의식 자체를 손상하지는 않는다며 “전통적인 방식에 장난스런 변형을 준다고 해서 예식의 근본적인 목적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오토바이 뒤에 타고 결혼식을 하건 수중 예식을 올리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펜실베니아대학의 사회학 교수 로버트 히슬리는 “모든 제도 가운데 결혼식이 가장 엄격한 ‘성적 역할’을 고수하고 있으나 이 역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꽃소녀’에서 ‘꽃남’으로의 이동은 부드러움과 꽃, 여성성의 상징으로 남성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상당한 변화라고 말했다.
히슬리는 이 같은 변화는 결혼의 가부장적 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소녀 화동은 몇 마디의 칭찬을 듣는 것으로 만족한 채 신부의 그림자 속에 머문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과 신부이기 때문에 들러리가 이들보다 더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는 것은 손님과 주인이 바뀌는 ‘주객전도’(主客顚倒)에 해당한다. 따라서 ‘꽃남’의 역을 멋지게 소화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신부를 압도해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튀거나 경망스런 행동으로예식의 격을 떨어뜨려서도 안 된다.
헨 페르난도와 마이클 맥킨더 결혼식의 꽃남으로 ‘출연’한 막스는 “신랑신부에게 가야 할 관심을 내가 가로 채지 않도록 조심했고, 하객들에게 재미를 주면서도 예식을 경박한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자평했다.
그는 “베스트맨으로 결혼식 피로연 연설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내게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며 “하지만 꽃남 역할을 끝낸 뒤에는 하객들 모두가 ‘너무 잘했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하더라”고 밝혔다.
막스는 “엉뚱한 짓을 하고 점수를 딸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꽃남’ 노릇은 내게도 평생의 추억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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