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들이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들의 목표는 건강한 몸매가 아니다. 홍콩 섭식장애협회 임상심리학자인 필립파 유는 키와 현재의 몸무게에 관계없이 체중을 100파운드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이 이들의 지상목표라고 말한다. 100파운드라면 대략 45킬로그램 정도. 쉽게 말하면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의 평균 몸무게에 해당한다. 정상적으로 발육한 성인 여성이 ‘꿈의 몸무게’를 지니려면 말 그대로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일반적인 다이어트 정도로는 마법의 숫자에 도달하기 힘들다.
취업·결혼대비 가녀린 몸매
근육 나올까 운동도 피해
기생충 삼켜 구토·설사까지
홍콩에서 마케팅 업종에 종사하는 아가사 야우(22)의 현재 몸무게는 100파운드. 5피트2인치(약 158센티)의 키를 지닌 야우는 ‘100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다이어트 약을 복용하고, 야채 삶은 물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요즘도 그녀의 저녁식사는 두 수저 분량의 쌀밥과 소량의 국, 야채가 전부다. 스타벅스 커피점의 스킴 캐러멜 마키아토를 좋아하지만 마시지는 않고 냄새만 맡는다. 그녀는 “캐러멜 마키아토는 결혼해 가정을 꾸린 다음에 마실 것”이라고 말한다.
야우가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좋은 짝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여기 남자들은 대체로 왜소하고, 자신보다 몸집이 큰 여성 앞에서는 좀처럼 숫기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녀린 몸매를 지녀야 결혼상대를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
덕성여대의 심리학 교수 김 미리해교수는 “한국의 경우 야윈 몸매가 아름다움의 주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체중은 취업에도 영향을 끼친다.
덕성여대 4학년인 이현정(25)씨는 제약회사 판매대리인으로 취직하고 싶어 다이어트중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우선 날씬한 몸매를 지녀야 면접관들로부터 근면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게으름뱅이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5피트4인치의 키에 150파운드의 몸무게를 지닌 이현정씨는 극단적인 체중조절 방식 대신 저지방 식품을 섭취하고 하루 두 시간씩, 일 주일에 다섯 번 운동을 한다. 이 방식으로 10파운드를 덜어냈고 앞으로 22파운드를 추가로 감량할 계획이다. 하지만 홍콩의 여성들은 운동을 극도로 꺼린다. 운동을 하면 살이 근육으로 바뀌어 감량효과를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여성적인 몸매를 갖출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체중조절의 기본인 운동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극단적인 식이요법이나 기상천외한 ‘비법’뿐이다. 이중 하나가 살아 있는 기생충 삼키기. 젊은 여성들 사이에 기생충 감량법이 유행하자 홍콩 보건국은 지난해 2월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되는 기생충은 복통, 구토와 설사를 일으키고, 심할 경우 사망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운동은 싫고, 기생충 삼키기는 더더욱 끔직한 여성들은 중국 전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슬리밍 센터(slimming center: 감량센터)로 몰린다.
이들 감량센터는 저마다 특이한 ‘비법’을 앞세워 고객들을 끌어 모으는데 상하이에 본부를 둔 추아니에 슬리밍센터의 ‘특기’는 진동을 이용해 지방을 분해한다는 초음파 리포석션. 미라를 만들 듯 고객의 몸에 약초를 올려놓고 천으로 칭칭 감은 다음 열발산기 안에 ‘안치’하는 특수요법도 인기가 있다. 추아니에 슬리밍센터 관계자들은 이 비법을 사용하면 살이 빠지는 것은 물론 체내의 독소까지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곳을 찾는 고객중에는 미리 골라둔 웨딩 드레스에 몸을 맞추려는 예비신부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추아니에 슬리밍센터의 매니저인 수웬리는 고객들에게 따로 운동을 하지 말라고 권한다. “치료를 받는 동안 운동을 하면 살이 근육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아시아 전역에 지점망을 갖춘 마리 프란스 바디라인도 ‘운동 없는 감량’이라는 컨셉을 앞세워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단 한번의 전기자극 요법으로 2인치 두께의 체내지방을 거둬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홍콩 마리 프란스 바디라인의 고객서비스 매니저 윙 임은 “젊은 직장 여성들은 매일 장시간 일을 하기 때문에 퇴근 후 또다시 땀을 흘리길 원치 않는다”고 귀띔한다. 홍콩의 다른 슬리밍 센터들도 적외선 방사치료와 전기자극 치료로 체중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결해 준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홍콩 소비자위원회는 감량센터들의 치료법은 “효과가 의심스럽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극단적인 감량법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과 비례해 섭생장애(eating disorder)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베이징에 위치한 북경대학의 정신건강연구소에는 섭생장애 환자 100여명이 입원치료를 받았다. 반면 같은 증상으로 10년 전 이곳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수는 20명에 불과했다.
식생활이 바뀌고 생활습관이 변하면서 아시아에서도 청소년 비만은 골칫거리다. 그러나 홍콩의 건강전문가들은 가장 큰 문제는 과체중 청소년들이 아니라 음식을 멀리하는 젊은 여성들을 다루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섭생장애 환자의 대부분은 극단적 다이어트의 부작용에 시달리는 여성들이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여성에게 다이어트가 단순한 건강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미’(美)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바뀌기 전까지는 극단으로 치닫는 ‘살과의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야우의 지적대로 “여성에게 다이어트는 일생의 과업”이기 때문이다.
아가사 야우는 “여성에게 다이어트는 일생의 과업”이라고 말한다. 5피트2인치에 100파운드의 체중을 지닌 야우는 앞으로 2~3파운드를 추가로 덜어낼 예정이다.
홍콩에서 다이어트 광고는 지하철역에서 약국에 이르기까지 안 걸린 곳이 없다.
<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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