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한국방문객 숙원이던 하늘길 열려
일반 승객 274명 싣고 김포공항 출발 15시간 10분만에 JFK 도착
주 3회 운항...무역 비즈니스에도 큰 몫
1983년 뉴욕발 서울행 080편 소련영공서 격추 냉전시대 희생양
한인의 대거 미국이민이 시작된 1970년대만 하더라도 서울과 뉴욕을 잇는 직항 비행기 노선은 없었다. 한국 국적기의 미주노선 취항 이전이어서 물론 없었고 당시 극동노선을 취항했던 미국의 노스웨스트항공이나 팬암항공, 일본항공도 여러도시 경유지를 거치는 노선 뿐이었다. 본국을 잇는 직항노선이 없던 시절 무역인들이나 한국 방문객들은 불편하기 이를데 없었다. 중간에 환승을 해야 했기 때문에 1박 스케줄이 늘어나거나 수화물이 많은 여객들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그렇듯 본국 방문객들의 숙원이던 서울뉴욕 직항노선이 개설된 것은 1979년이었다.
3월29일 오후 6시52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뉴욕행 B747-200B KE008편 1번기가 케네디 국제공항에 착륙한 시각은 정확히 저녁 9시22분이었다. 주3회 왕복 스케줄에 맞추어 출발한 점보 여객기가 중간 기착지인 앵커리지에서의 1시간 20분을 포함해 15시간10분 만에 뉴욕에 도착함으로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이 취항기에는 일반 승객 274명이 탑승했고 승무원으로 기장 홍순상, 부기장 정우홍, 기관사 곽철, 수습기장 오성환과 13명의 객실 승무원들이 동승했
다. 이들 일행은 곧바로 자리를 옮겨 당일 오후 9시 30분 부터 30분간 케네디 공항내 아메리칸항공 공항 청사에서 사장 조종훈이 주최하는 현지 축하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에는 뉴욕주 부지사와 아메리칸항공 사장을 비롯, 한국 총영사관 공관원및 대한항공 현지 주재원들과 서울에서 온 취항편 승객, 승무원 전원이 참석하여 국적기 뉴욕진출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재미한인사회에서의 시각으로 본다면 한국과의 거리가 성큼 가까워진 셈이다. 방문객들은 물론 한
국과 무역을 하는 비지니스에도 큰 몫을 하게 됐다.
이에앞서 비행기가 김포를 출발하기전 오후2시 김포공항 격납고 앞에서 뉴욕행 첫 여객편의 취항을 기념하는 취항식이 열렸다. 출발지와 도착지에서 각각 두번의 기념행사가 하루에 열린 셈이다. 규모면에서는 뉴욕에 도착해서 열린 축하행사보다 출발시의 행사가 더 성대했다. 당시 교통부 장관 황인성, 정부요인 외교사절, 재계, 학계, 법조계, 언론계 인사등 한진그룹 각사 임원들이 참석했고 부사장 조중건이 사장을 대신해 기념사롤 했다. 뉴욕 취항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서비스 보국 의지를 다짐했다. 당시로선 대한항공의 민항 10년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었다.
대한항공측은 뉴욕 취항을 미동부및 캐나다 동부, 한국, 동남아, 일본등을 주시장으로 하고, 미국 남부, 남미를 보조시장으로 하여 60%-63%의 탑승률을 목표로 했다. 취항 첫해인1979년 3천만 달러, 이듬해인 80년 7천1백만달러를 목표로 했던 뉴욕 정기 여객노선은 초기에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79년 탑승률 62%, 총수송 5만8506명, 총수입 143억6600만원(2968만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이는 대한항공 전체 미주노선 수입실적의 14,3%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1980년에는 탑승률 76,2%에 총10만1천여명을 수송했고 81년에는 73,5%의 탑승률에 9만3천여명을 수송하는등 성공적인 실적을 보였다.
당시 경쟁사는 미국의 노스웨스트와 팬암, 일본항공등 3개사였다. 대한항공이 뉴욕노선에 뛰어들 당시 노스웨스트 항공은 4개의 노선을 운영하고 있었다. 뉴욕-워싱턴-시카고-서울 3회, 뉴욕-시애틀-도쿄-홍콩 주7회, 뉴욕-워싱턴-시카고-도쿄-오키나와-마닐라 주2회, 뉴욕-워싱턴-시카고-도쿄-마닐라 주2회등 총 14회 기종은 B747 점보기였다. 팬암은 뉴욕-코도쿄-오사카 주7회 기종은 B 747SE였다. 한편 일본항공은 도쿄-앵커리지-뉴욕 노선에 주8회 기종은 DC-8과 DC-10을 띠우고 있었다.
서울-뉴욕 직항선 개설 4년째가 되던 1983년은 대한항공이 미소간 냉전의 희생물이 된 해였다. 그해 9월1일 뉴욕을 출발,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080편이 소련영공 캄차카 반도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의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던것. 250여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한 이사건은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켜 각처에서 반소 시위가 일어났고 뉴욕에서도 격분한 동포들이 롱아일랜드 글렌코브 소련인 거주지에 몰려가 소련기를 불태우는등 규탄시위를 벌였다.(별도 연재)
지난해로 뉴욕 직항노선 개설 30년을 맞은 대한항공은 요즘 매일 2회, 주14회로 운항횟수를 늘렸다. 연간 수송객은 줄잡아 20만여명선. 개설 축하 테이프를 끊었던 조중훈 회장이 2002년 타계함으로서 아들 조양호 회장으로 바튼터치 됐다.
대한항공 뉴욕 직항노선 취항 기념식 … 1979년 3월29일 저녁 케네디공항
아메리칸항공 대합실에서 조중훈 회장과 윤호근 당시 뉴욕총영사등이
테이프를 끊고 있다.
■ 서울-뉴욕간 직항노선 취항 이전 입국 경로
해방전 증기 화륜선 태평양 노선 취항
1883년 보빙사절단 요코하마-SF까지 22일 걸려
해방전에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화륜선이 태평양 노선에 취항했다. 최초의 공식 사절단인 보빙사절단은 1883년 8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동서양 기선회사 소속 아리빅 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데 22일 걸렸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87년 10월26일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는 요코하마에서 영국적 기선 오셔닉 호를 탔다. 당시 선비는 일화로 상등 175원, 중등 80원, 하등
이 50원, 샌프란시스코애 도착하는데 19일 걸렸다. 20세기에 접어들어 하와이 첫 이민그룹이 1902년 12월22일 인천항 출항, 일본 고베에서 신체검사후 상선 게일릭호 타고 93명이 22일을 항해 끝에 1903년 1월13일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후로는 주로 망명성 유학생들이 미국에 입국했다. 1913년 10월10일 서울을 떠난 임병직(전 외무장관)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기선 지요마루(지양환)에 몸을 실었다. 3등 객실 선객으로 5일만에 하와이에 당도, 그곳서 이승만과 해후했다. 며칠 묵은 후 다시 배를 타고 5일만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역시 유학생인 김도연(전 재무장관)은 1922년 6월 요코하마에서 대양환이라는 1만여톤 되는 기선을 타고 장도에 올랐다. 집안이 부유했던 그는 2등 선객으로 침대가 갖춰진 독실을 쓰면서 10일만에 하와이에 도착, 하와이서 1박하고 다시 11일 동안 항해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한승인(전 주불공사)은 1926년 10월 요코하마를 출발하는 대양환을 타고 하와이 기착 빼고 20일 걸려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제일 값싼 선실 3등B 신세를 진 그는 좁은 공간에서 청소도구, 주방용구등과 함께 실려왔다. 임창영(전 주유엔대사)은 1930년 6월 요코하마서 시애틀행 하카와마루를 타고 20여일만에 도착했다. 2등 배삯은 미화로 125달러, 환율이 2대1로 일본돈 250엔을 지불했다.
해방후 유학생들의 미국행은 그보다 훨씬 수월해 졌다. 쌍발 프로펠러기가 태평양 상공을 나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소 여유있는 유학생들은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그도 여의치 않은 학생들은 값싼 선편을 이용했다. 해방후 첫 유학생 그룹의 한사람인 임길재(산부인과 의사)는 미국무성 초청으로 1946년 4월18일 서울을 출발, 동경서 노스웨스트 항공편을 갈아타고 앵커리지를 거쳐 시애틀에 하루만에 도착했다. 현봉학(의사)은 47년 9월 중순 인천서 미군 수송선을 250달러에 교섭해 9월말 시애틀에 도착했다. 김일평(코네티컷대 명예교수) 역시 53년 9월초 선편을 이용했다.
당시 비행기는 9백달러였고 선편은 반값이었다. 미국에서 원조물자를 싣고 왔다 되돌아가는 선편을 이용했다. 선장이나 가족용으로 쓰던 객실에 유학생 8명이 동승해 2주일간 항해 끝에 시애틀에 도착했다. 이정식(전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은 54년 1월말경 부산 피난시절 수영비행장에서 쌍발 프로펠러기를 타고 출발했다. 당시 비행장은 구멍이 숭숭 뚫린 철제 가드레일을 깔아 활주로를 만든 아직도 전쟁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출발, 동경을 거쳐 요코하마에서 미국적 여객선 프레지던트 클리블랜드호 를 타고 하와이를 거쳐 본토에 상륙했다. 조시학(전 뉴욕한인회장)은 58년 7월15일 여의도 비행장에서 쌍발 프로펠러기 타고 앵커리지, 시애틀을 경유, 시카고에 도착하는데 꼬박 35시간 걸렸다.
조종무<언론인,한국 국사편찬위원회 해외사료 조사위원>
요즘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대한항공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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