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관세 인하 기름값 상승으로 물거품
중국 갔던 제조회사들 멕시코로 속속 귀환
전기 자동차 제조회사인 테슬라가 미국 시장을 겨냥한 고급 승용차를 제작하기로 했을 때 전 세계 시장에서 부품을 조달할 계획이었다. 1,000파운드짜리 배터리는 태국에서 만들어 영국으로 보내 조립한 후 완성품을 미국으로 가져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봄 생산을 막상 시작했을 때는 배터리를 가주에서 생산해 조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차 한 대 당 5,000마일의 운송비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 판매 담당 부사장인 대릴 시리는 “너무나 쉬운 결정이었다. 급등하는 운송비 절감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 통합과 함께 월마트에서 T셔츠나 신발 등 미국사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지난 25년간 세계 경제를 주도한 세계화가 힘을 잃고 있다. 운송비 절감에 큰 몫을 했던 싼 유가는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함께 거리와 상관없이 싼 임금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던 세계 부품 공급망도 타격을 받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 선진국 일자리 감소, 식품 안전에 대한 걱정, 제네바 세계 무역 회의의 결렬 등이 세계화가 차질을 빚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재난 자본주의의 부상’이란 책을 쓴 나오미 클라인은 “월마트 모델은 단계마다 엄청나게 기름을 많이 쓰고 있다”며 “이제 우리는 운송비 급등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기름 값이 오르더라도 세계화가 반대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기업들이 운송비를 줄이기 위해 생산을 소비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것으로 분석한다. 브라질 철광을 중국으로 보내 세탁기를 만들어 롱비치로 보낸 후 시카고에서 파는 것은 지난 수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수지가 맞지 않는다.
스웨덴 가구회사인 아이케아는 수송비를 줄이기 위해 지난 5월 처음으로 미국에 공장을 열었다. 인건비 때문에 멕시코를 떠나 중국으로 갔던 일부 제조회사가 이제 멕시코로 돌아오고 있다. 트럭으로 제품을 미국으로 실어 나르는 것이 원가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경제학자들이 ‘이웃 효과’로 부르는 소비자 인근 지역 생산이 갈수록 중요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10년 전 10달러 대이던 원유가는 이제 120달러에 이르고 있다. 40피트 규모의 컨테이너를 상하이에서 미국까지 운반하는 비용은 2000년대 초반 3,000달러에서 이제 8,000달러로 늘어났다. 21세기 물류의 주역인 컨테이너 운송 선박은 기름 값을 절약하기 위해 최고 속도를 20% 줄였다. 이 때문에 운송 기간은 길어지고 있다.
캐나다 투자회사인 CIBC 월드 마켓 조사에 따르면 운송비 증가는 9%의 관세가 붙은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이 보고서는 “관세가 아니라 운송비가 세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이로 인해 지난 30년간 이룩해 온 무역 자유화가 물거품이 돼 버렸다”고 결론짓고 있다.
운송비 급등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과 때맞춰 일어나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가 심한 유럽에서 중국이나 인도로 생산을 옮겼다. 그러나 교토 의정서의 뒤를 이을 환경협정이 마련되면 중국과 인도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들 국가의 생산비도 늘어날 것이다.
정치 환경도 변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반발로 이를 반대하는 정부가 라틴 아메리카에 들어섰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모두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자유 무역 협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도하 라운드 자유 무역협정이 결렬되면서 관세 인하 노력이 큰 타격을 입었다. 2001년 시작된 이 협상은 중국과 인도가 농업 관세를 놓고 미국과 충돌하면서 깨졌다. 이들 나라는 수입 농산품이 몰려들면 타격을 입을 자국 농부들을 보호할 권리가 있음을 고집했다. 세계화 비판자들은 이번 결과를 환영하고 있다. 환경 보호론자들도 세계화가 사망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기대가 지나친 것으로 보고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지구 인스티튜트의 제프리 색스 교수는 “주요 트렌드가 크게 변했다고 생각한다는 이는 착각”이라며 “거리와 운송비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운송비는 세계 무역 흐름을 좌우하는 한가지 요소일 뿐이다. 기업이 어디에 공장을 세울까, 어디서 물건을 살까를 결정할 때는 환율, 소비자 신뢰도, 노동비, 정부 규제, 인력 풀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운송비 상승은 닭과 생선을 아시아로 수송해 가공한 후 다시 수입하는 기이한 현상을 사라지게 만들 전망이다. 세계화 역사 전문가인 나얀 찬다는 “수송비가 낮아 사람들은 자원을 낭비해 왔다”고 말한다.
운송비 급등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업종은 무겁고 부피가 큰 제품을 만드는 곳들이다. 강철이 한 예다. 중국 철강의 미국 수출은 1년 전에 비해 20%나 줄었는데 이는 10년내 최악이다. 반면 미국 철강 생산은 수년 동안 하락하다 증가세로 돌아섰다. 기계제품 등 냉장고 등 가전제품도 비슷한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농산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CIBC 월드 마켓의 수석 경제학자인 제프 루빈은 “1월에 미니애폴리스에서 아보카도 샐러드를 수입해 먹는 것은 더 이상 채산성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 본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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