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구안 미래에셋증권 시총 맞먹고
▶ 하만·플랙트 빅딜 규모 수배 달해
▶ 사측 수용땐 1인당 4.8억원 수령
▶ DX·적자 사업부 반발 가능성도
▶ 투자 재원 임금소진 바람직 안해
5월 총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가 사측에 반도체 부문에만 올 해 성과급으로 약 37조 5000억 원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측은 노조의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요구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노사 간 성과급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는 250조 원을 올해 영업이익 기준선으로 잡고 사측에 15%인 37조 5000억 원 이상을 성과급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사측이 7일 영업이익 57조 2000억 원의 1분기 실적을 발표한 후 “시장과 내부 전망치로 올해 영업이익이 270조 원 이상이 확실시되고 있다. 특별 포상이 아닌 1등 기업에 맞는 정당한 보상을 달라”는 입장문을 내고 이 같은 요구안을 사측에 전했다.
노조 요구안은 지난 한 해 삼성전자 연구개발(R&D) 투자비(37조 7000억 원)와 맞먹는다. 또 ‘빅딜’로 평가받는 하만 인수액(약 9조 3000억 원)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노조가 회사의 미래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반응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가 반도체 부문(DS)에서만 올해 37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성과급을 요구하고 나서자 회사 내부 직원들도 “도를 넘어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노조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급 요구에 “대기업 몇 개를 통째로 달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터져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 규모는 실제 9일 종가 기준 코스피 시가총액 20위에 올라 있는 미래에셋증권(37조 5949억 원)의 가치와 비슷하다. 단순 계산으로는 현대모비스(36조 4291억 원)나 HD현대일렉트릭(35조 3262억 원)의 주식 100%를 사들일 수 있는 자금이다. 특정 기업, 특정 사업 부문이 국내 주요 대기업의 시총을 웃도는 돈을 성과급으로 달라고 한다는 사실에 대부분 직장인이 허탈해하며 박탈감을 표했을 정도다.
사측은 노조의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청구서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요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미래 투자를 접자는 말”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래 먹거리와 신기술 개발을 위해 2024년 35조 원, 지난해에는 37조 7000억 원을 연구개발(R&D)에 지출했고 올해는 설비투자를 포함해 110조 원을 지출할 예정이다. 노조 협상안은 한 해 R&D 비용을 통째로 반도체 부문 직원들에게만 나눠달라는 주장이다.
성공적인 인수합병(M&A) 사례로 평가받는 하만·플랙트그룹 등 ‘빅딜’과 비교해도 몇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당시 9조 3000억 원(80억 달러), 지난해에는 유럽 1위 공조업체 플랙트그룹을 2조 4000억 원(15억 유로)에 인수했다. 삼성전자 노조에 한 번에 지급할 성과급이면 하만 같은 기업 4개, 플랙트는 15개를 인수해 미래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의 빅테크와 다르게 삼성전자는 어쩌면 운이 좋게도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맞이해서 이익이 늘어났다”며 “벌어들인 이익으로 대형 M&A를 할 수 있는 적기를 맞이했는데 성과급으로 다 분배하는 것이 옳은 경영이냐”고 꼬집었다.
특히 사측은 반도체 팹 1개를 설치하는 비용이 60조~70조 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벌어들이는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미래 투자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 P5의 건설을 서두르고 있고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도 320조 원 이상을 쏟아부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DS부문의 이익에만 몰두한 노조가 삼성전자의 사업부 간 갈등마저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안을 수용할 경우 DS부문 조합원 약 7만 8000명은 1인당 평균 4억 8000만 원의 성과급을 수령하게 된다. 노조는 사측에 37조 5000억 원의 성과급을 요구하며 분배 조건을 DS부문 70%, 사업부 30%의 비율로 산정했다. 영업이익 250조 원을 기준으로 나누면 메모리사업부의 조합원 약 2만 7000명은 1인당 5억 6000만 원의 성과급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반면 DX(디바이스경험)부문 또는 적자를 보는 사업부는 성과급 자체를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조합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노조가 특정 사업부의 성과급을 극대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사측은 전체 임금인상률을 6.2% 인상하고 적자를 보는 시스템LSI 사업부 등에도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선(50%)을 넘는 75%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또 최대 5억 원에 달하는 직원 주거안정지원 대출 등도 제안했지만 노조는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규모의 성과급 지급 △OPI 상한 영구폐지 및 영업이익 10% 규모의 성과급 지급 등 두 가지 안을 수용하라고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재계도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는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협상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SK하이닉스에 이어 삼성전자도 영업이익의 10% 이상을 성과급으로 배분할 경우 국내 대기업 모두 같은 요구에 직면할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영업이익률이 60%에 달하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와 달리 국내 기업들은 10%도 안 된다”며 “이익의 10%를 배분하면 투자 자금도 마련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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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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