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트리니리서치 보고서 쇼크
▶ “AI 개발사 새기능 공개할 때마다 기존 산업 주도하던 강자들 타격 고통스러운 시장 재조정의 과정”
▶ 시트리니 경고에 SW기업 투매 속 “허구의 이야기” 과잉 반응 지적도
소프트웨어(SW) 기업 투매를 일으킨 시트리니리서치 보고서는 2028년 중순 “미국 실업률 10.2%,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은 2026년 하반기 고점 8000 대비 38% 폭락”이라는 충격적인 헤드라인으로 시작한다. 현재의 인공지능(AI) 낙관론이 모두 맞아떨어졌을 시 극도로 효율적인 AI가 ‘마찰(Friction)’적 비효율을 제거해 SW를 시작으로 산업과 고용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고용·소비 증발에 따라 실물경제가 무너지고 부동산 대출은 물론 기존 결제 시스템까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에 자본시장은 소프트웨어·금융·부동산·사모펀드(PEF) 등 전방위적으로 공포스러운 반응이 이어졌다. AI가 불러온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창조적 파괴’가 현 시장 기틀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번진 것이다.
지난달 23일 뉴욕증시에 따르면 ‘AI 공포 투매’는 연초부터 정보기술(IT) 섹터 전반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보안 분야에서는 클라우드스트라이크가 연초 대비 22.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대표주인 세일즈포스는 29.8% 주저앉았다. IT 컨설팅·시스템 통합 업체 가트너와 인튜이트는 연초 대비 각각 38.8%, 42.9% 내렸고 게임 엔진 개발사 유니티는 구글발 가상세계 모델 등장에 61.3% 폭락했다. AI 개발사의 새로운 기능이 등장하자 SaaS를 시작으로 게임, 사이버 보안, 신용카드까지 줄줄이 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앤스로픽 AI 새 기능에 시트리니리서치의 AI 전망 보고서까지 공개되며 낙폭을 더했다. 시트리니는 AI가 모든 마찰적 비효율을 제거하며 정보 비대칭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던 사업과 노동 가치가 사라진다고 내다봤다. 인간의 ‘게으름’ 덕에 유지되던 여행 예약, 보험 중개, 단순 금융투자 자문 등의 산업이 무너진다는 전망이다. 시나리오에서 AI 혁신이 어떻게 소프트웨어, 전자결제, 배달 플랫폼 등의 업체들에 수수료 수입 하락 압력을 가하는지를 설명하자 매출 타격 기업 예시로 언급된 비자(-4.53%), 마스터카드(-5.77%), 도어대시(-6.60%), 서비스나우(-3.33%), 블랙스톤(-6.23%) 등은 일제히 주가가 떨어졌다.
SW로 기업 업무 효율을 높여주며 높은 비용을 받아내던 SaaS 기업은 고객사가 필요한 서비스를 AI로 자체 개발하기 시작하며 몰락한다는 관측도 내놨다. AI 에이전트와 ‘가성비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물론 AI로 효율성이 높아진 고객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만큼 1인당 구독 계약이 해지돼 수익성이 쪼그라든다는 설명이다. 시트리니는 “SaaS 기업 영업담당자는 기존 계약의 경직성을 이용해 연간 5% 가격 인상을 통보하는 대신 30% 더 싼 가격을 제시한 오픈AI와 경쟁해야 한다”고 했다.
해고에도 치솟는 기업 생산성은 ‘유령 GDP(Ghost GDP)’ 현상을 부른다. AI 도입으로 국가와 기업의 생산성은 치솟지만 근로자는 대량 실직한다.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AI 도입을 더욱 가속하고 소득을 잃은 가계는 지갑을 닫는다. 소비가 사라지면 소득세와 소비세에 기대던 정부 세수 역시 증발해 국가 재정위기가 도래한다. 시트리니는 “단 하나의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가 맨해튼 사무직 1만 명의 생산성을 낸다는 것은 경제적 재앙에 가깝다”며 “소비가 GDP의 70%를 차지하지만 기계가 소비재에 쓰는 돈은 제로”라고 지적했다.
실직한 개인들이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면 파국은 부동산으로 번진다. 시트리니는 이 위기는 부실 대출로 인한 ‘서브프라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봤다. 대출 실행 당시에는 빅테크와 월가 금융권에서 일하던 우량 신용자가 대량 실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트리니는 “지금의 산업·금융 체계와 기술 도입 과정이 ‘똑똑한 지능(인간)은 귀하다’는 전제 아래 진행됐는데, 이런 희귀함이 없어지고 지능 프리미엄이 청산되면서 매우 고통스러운 시장 재조정(repricing)이 일어난다”고 했다.
실물경제 붕괴 여파는 AI 인프라 투자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현 인프라 투자를 지탱하는 자금은 기업간거래(B2B)에서 대형 계약을 따낸 SaaS가 지불하는 클라우드 사용비다. 하지만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AI 기업들이 SaaS 생태계 파괴 후 현 클라우드 매출을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실제 오픈AI·구글·앤스로픽은 토큰(AI 연산단위)당 사용료 인하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일반 사용자용 구독제도 ‘챗GPT GO’ 등 염가 경쟁이 치열하다. AI가 기존 전문 SW 대비 갖는 효용성이 ‘가성비’인 만큼 사용료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이에 일각에서는 SW 시장 붕괴 시 AI 인프라 투자의 ‘손익분기점’ 달성 시기가 더욱 멀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AI 인프라 투자에 기대 고공 행진 중인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 주가와 코스피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월가에서는 시트리니 보고서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토머스 조지 그리즐투자운용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않더라도 경제 공급망 차질에 대한 실질적인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며 “투자자 확신을 크게 꺾어놓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를 공저한 제임스 반 겔렌 시트리니리서치 창립자와 알랍 샤 로터스테크놀로지매니지먼트 분석가는 “이 시나리오 중 일부는 현실화되지 않겠지만 AI 발전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인간 지능 가치가 낮아질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며 “투자자는 포트폴리오를 재평가하고 사회 전체적으로 (변화에) 대응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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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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