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왜 사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 두루미는 우선 말없이 창공으로 높이 날아오를 것이다. 산간계곡, 드넓은 벌판 오르내리고 달려 온 여정을 테마로 하는 진술서를 적어 낼 것이다. 왜 사는 거냐는 버거운 추궁 앞에 지식인들의 명언이 떠오른다.
염세주의의 대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은 고통뿐이며 따라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라고 절규했고, 대표작 ‘파우스트'를 쓴 괴테는 ‘생의 환희는 크지만 자각하는 삶의 기쁨은 더 크다'라며 삶의 보람을 찾아내는 구실을 제시했다. 나, 두루미는 왜 사는 거냐 라는 질문이 들어 올 때마다 매번 허를 찔린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는 속절없이 옵티미즘(Optimism: 낙천주의)과 페시미즘(Pessimism: 염세주의) 사이를 넘나 들고 있는 지금을 번민하고 있다. 아직도 해탈과 위선, 어느 것도 미완성으로 방황하고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게 주어진 한계상황은 이제 그만 내려놓고 정리하라는 시그널을 보내오는 것을 실감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 할 일은 많은데 막을 내려야 하는 시간은 코앞에 와 있고… 묘한 우수가 밀려온다. 한동안 무위, 허무주의에 취해 자포자기 타락했고 실의의 늪에 빠져 하한선을 넘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내력들을 지워버리고 삶의 이유를 대답해 보라면 정직한 내막을 모두 적어내려는 용기에 스스로 뻔뻔함을 느낀다.
세월은 참선의 과정이련가. 세상사에 몰두하고, 부대끼고, 침체하고, 해결하고… 갖가지 경험으로 완숙해 가는 것이 모두의 삶이 아니던가. 나, 두루미도 그 같은 보편적 생애의 한가운데서 터득한 단어 한 개가 있다. ‘…위하여’ 바로 이것이다. 총체적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대답하라면 ‘…위하여’ 한 단어에 모든 의미가 축적돼 있음을 부정할 도리가 없을 것 같다. 세상 모든 인연을 위하여,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랑을 위하여, 자비 화해, 반성 회개, 용서 망각, 은혜 봉사 등등 우리 서로가 서로를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해도 엉뚱한 말은 아닐 것이다. 다시 ‘위하여’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이 세상에 진리파지(眞理把持), 선교를 위하여 열정을 쏟는 이들이 없었더라면 어떤 불행으로 세상이 가득 차 있을 것인가. 단순히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라는 원초적 질문보다 “왜 사는 거냐”는 추궁에 사명감을 가지고 진술한다면 단호히 ‘위하여'라는 구호를 적어 내겠다. 나, 두루미는 다행으로 만고풍상, 우여곡절 겪어 왔고 이겨냈다.
그 같은 역경을 지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해왔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하여, 그른 것을 지탄하기 위하여, 부패를 규명하기 위하여, 선행을 장려하기 위하여… 마음껏 외쳐 왔다. 누구도 하고 싶은 말, 자기 판단대로 거리낌 없이 나처럼 포효해 본 사람도 극히 드물 것이다. 지금도 신문 등 매스컴을 통해 나의 의견을 토해 내고 있으니 신께 감사할 일이 아닌가.‘왜 사느냐’ 하는 물음에 대한 확답은 분명 ‘위하여'이지만 그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늘 탈선을 경계하고 있다. 법화경은 “마음은 모든 일의 근본이 된다. 마음은 주(主)가 되어 모든 일을 시키나니 마음속에 악한 일을 생각하면 그 말과 행동 또한 그러하리라. 그 때문에 괴로움은 마치 수레를 따르는 수레바퀴처럼 된다."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예수는 “하늘나라가 네 마음속에 있다", “하늘나라가 너의 중에 있다"라고 가르쳤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첨언하고 싶다. ‘위하여’를 답안지 주어로 적어내며 기억나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있다. “그저 산다는 것만이 인간의 의무는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 그리고 양심이 명하는 대로 보다 더 올바른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위하여’를 삶의 이유와 설계로 다짐하면서 신에 대한 자비은총이 한층 더 심오한 감격으로 젖어든다. “신은 죽었다”, “신은 조상에 대한 공포로 부터 기원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 신 자체가 우리의 가장 오래된 거짓말”이라는 니체의 외침을 경멸한다. 그리고 두루미는 때때로 말년의 고독을 달래며 옛 시(古詩)들을 읊는다. ‘청산별곡' 제 10절,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 손뎌 /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또 엇디 호리라…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이럭저럭 낮에는 지나건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에는 어이할꼬)
(571)32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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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두루미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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